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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82]

En Hakkore 2024. 7. 24. 17:13

염려하지 말라 5(마 6:32-34)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2절).

이 말씀에서 주님은 왜 그의 사람들을 일시적인 필요물에 대하여 부적절한 근심을 해서는 안 되는지 두 가지 이유를 덧붙이셨다.♡

첫째로, 그러한 염려는 이교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문 말씀에서 '이방인' 이라고 기록된 헬라어가 사도행전 4:25; 갈라디아서 1:16에서 '열방' 내지 '이방' 으로 번역되어졌음을 지적할 때 더 분명하게 보여질 것이다.

동시에 그리스도는 '이방인' 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계시도 받은 바 없는 완전한 영적 어둠에 있는 자들로 말씀하셨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의 통치에 대하여 가장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모든 것은 맹목적이며 무정한 운명에 의해 정해져 있다고 믿는 반면에, 또 다른 이들은 정 반대의 극단으로 나아가서, 어떠한 것도 예정되어 있지 않으며, 모든 것은 변하기 쉬운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것이 바로 진리의 영에 의해 조명되지 않았을 때 인간의 철학적인 해석이 많이 자랑하는 근거이다. '이방인들' 이 그들의 '신들' '을 생각하는 개념은 그들이 신뢰할 수 없는 그러한 것이다.

열심히 섬기는 신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러한 자비심 많은 존재로서 그들의 '신들' 을 간주하기는커녕, 단지 가장 값비싼 헌물(사제들에 의해 착복되는) 을 바쳤을 때에만 그 사랑을 구할 수 있는, 그리고 인간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그 분노를 풀 수 있는, 두려운 대상으로서 생각한다.

이 눈물의 골짜기 너머의 내세의 생활에 대해서, 이교도들은 가장 모호하고 비관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결과적으로 그들에게는 이 세상이 곧 전부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의 모든 생각과 정력은 그 필수품과 안락을 얻는 데 쏟아지고 있으며, 그러한 것들이 그들의 주된 행복을 이룬다. 그들은 먹고 마시는 것, 충분한 물질을 갖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기쁨을 얻는 것을 최고로 열망한다.

이 세상의 것을 적게 소유한 자들은(많이 소유한 자들은 극히 적을 뿐이다) 이내 그들의 빈약한 밑천이 자신들을 완전히 실패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근심으로 무겁게 짓눌려 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근본적으로 이 말씀에 의해 그리스도께서 묘사하시는 바 이교도들의 행동은 우리의 번역문이 암시하는 것보다 더 강한 성격으로서 그들이 '헌신적으로 구하고 있음' 내지 '전력을 구하고 있음' 을 의미한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사항이다.♡ 즉 단순히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일은 의무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구하고자 완전히 자신을 내던지는 일은 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 당시의 이방인들의 실정이었다. 그들은 참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지 못했다. 그의 말씀을 알지도 못했으며, 그의 섭리에 대하여도 무지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입장과는 너무도 크게, 너무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명분에서 너무도 멀리 벗어나 있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기록된 말씀의 계시로 말미암아 그는 그의 모든 필요를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이교도의 위치로 떨어지다니 이 얼마나 부끄럽고 악한 일인가! 이교도들은 마음에 근심 걱정이 있으면 서슴치 않고 하나님을 불신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주님의 논증(이것은 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서두의 '이는' 이라는 말에 분명히 드러나는 단념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볼 때 그러하다)의 힘은 다음과 같이 말을 바꿔서 설명해 보면 더 분명해질 것이다.

즉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에 그들의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의 병행구에서는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눅 12:30)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이 없는 자들을 지배하는 그러한 사고 내지 행동양식에 의하여 다스려진다는 것, 거듭나지 않은 자들의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요즈음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일을 행하고 있다. 이 20세기는 진정 허식적이며 물질주의적이다.

사람들이 '기독교 문명'이라고 부르는것과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탁한 제국에서 이루어진 상황은 너무도 흡사하다. 인간 본성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이 그의 변화시키는 힘으로 역사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곳 외에는 불가피하게 그렇게 지속될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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