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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79]

En Hakkore 2024. 7. 24. 17:12

염려하지 말라 4(마 6: 30-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31절).  

그리스도는 25절에서 불신적인 염려에 대해 주셨던 계율을 반복하고 계신다. 이렇게 반복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까닭에서이다.

첫째로, 전에 지적했듯이 계율을 강조하심으로써 우리 심중에 좀 더 날카롭게 깊숙이 박혀지도록 한 것이다.

둘째로, 제자들을 믿음의 훈련에서 더욱 진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반복함으로써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이 의무를 좀 더 자주 고찰하고 숙고해 볼 기회를 주시는 것이며, 그에 의하여 그들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 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중에 믿음을 가지거나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수동적인 환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믿음을 맞아들이거나 개발시켜야 함을 인지하고 파악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믿음의 성장은, 환상이 밤에 꿈을 통하여 예언자에게 보여지듯이, 혹은 인장의 자극이 봉인되어지듯이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나아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 가운데서 은혜를 평범한 수단을 사용하여 역사하신다.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자들 가운데 이 문제에 있어 자신들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자들이 있다. 즉, 신앙이란 초자연적인 원리,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선물인 까닭에 그것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권리와 영역 밖이라는 것이다.

그와 같은 운명론적인 무관심, 그러한 무감각한 타성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들은 무기력해진다. 결코 쓰여지지 않는 능력들은 이내 가진 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믿음을 증진시키는 방법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의 분량대로 일하며,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무는 매일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그에 대해 묵상하고 우리의 심중에 하나님의 약속을 새겨두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으로 믿기를 촉구하며, 의심과 불신에 대항해 싸우고,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시기를 성실히 기도하는 것이다.

불신적인 염려를 금하는 그리스도의 명령과 관련하여, 우리는 생활에 필요한 것에 대해 근심하지 않는 문제에 있어 우리 의무가 어느 정도까지 적용되는지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선을 그어야 하는지 알아야겠다.

그것은 필요한 것들을 조달하는 통상적인 정당한 수단을 근면하게 사용하는 범위까지 적용되여 그 범위에서 선이 그어진다. 거기에는 계속하여 주의할 필요가 있는 두 가지 위험성이 있다.

한편은 무신론이며, 다른 한편은 광신주의이다. 우리는 극단으로 취우치기 쉬운 경향이 있으므로 중용에 이르기 위해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부지런히 수단들을 사용하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해야지 수단들을 신뢰해서는 안된다.

그 점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인식해야 하며, 그 수단들에 대한 하나님의 복을 틀림없이, 그리고 겸손하게 추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번영시키기를 기뻐하시는 것 외에 다른 어떠한 수단도 우리에게 유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농부가 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햇빛과 비를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런 수확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성경을 아무리 면밀히 연구해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에 대해 거룩하게 적용시켜 주시지 않는다면 영혼에 마무런 유익도 없게 된다.♡

반대로 하나님을 좀 더 온전히 신뢰한다는 구실 아래 어떠한 수단을 경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태함은 곧 불순종이다. 성경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말하고 있다.

농부가 그의 밭을 갈지도 씨를 뿌리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께 훌륭한 수확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기대하는 것은 가장 커다란 광신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고용되지 않은 신체 건강한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보러 나가는 대신 그의 필요한 바를 공급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간청하면서 게으르게 주저앉아 있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그를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몸이 아팠을 때 위대한 의사 앞에서 자신의 병증을 펴보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만일 그가 하나님의 섭리로 자기 앞에 보여주는 도움과 치료를 사용하기를 경시한다면 그는 주제넘게 행동하는 것이며, 신앙 안에 있지 않은 것이다.

자기 자녀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선택을 믿으며, 말씀이 명하신 대로 자녀를 훈련시키고 가르치는 데 실패한 부모는 귀중한 진리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세의 양식을 조달하는 일에 관한 우리의 의무는, 우리가 정직한 노력을 부지런히 행하며, 정당한 수단을 사용하고, 겸손하게 그에 대한 하나님의 복을 구할 때 이행된다. 그 때의 자기 노력이란 믿음을 연단할 기회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노력을 성공시키기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본문 말씀에서 금하고 계신 것은 마음을 산란케 하는 근심과 분신적인 염려로, 그것은 우리 동료들의 대다수의 영혼을 감염시키고 있는 영적 질병이다. 어쩌면 이러한 악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르는 이들이 이 점에 대해 스스로를 진지하게 시험해 본다면 대체 어느 정도나 확인될 수 있을는지:

당신이 평화롭게 잠들지 못하도록 종종 수면을 깨뜨리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잠자리에서 깨어났을 때 매 처음 마음에 뜨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하루 내내 당신의 상념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성공했을 때 무엇이 당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며, 또한 무엇이 가장 큰 기쁨을 주는가?

만일 그것이 이 세상의 것들이라면, 불신적인 염려가 당신의 영혼에 감염되어 있다는 징표이며 그에 대항하여 싸워야만 한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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