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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68]

En Hakkore 2024. 7. 23. 22:37

염려하지 말라 2(마 6:26, 27)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26절).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두 번째 논쟁을 적용하고 계신다. 단순히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을 생각해 본다 할지라도 우리는 공중의 새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은 피조물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성과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들을 먹여 살리신다면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해 내신 사람들을 위해 공급해 주시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전능자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구원해 주시는 은혜와 성령의 소생시키시는 사역의 대상이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되는 자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가 이 죄악의 광야를 지나갈 동안 우리를 굶어 죽도록 내버려 두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겨울의 죽음에 대비하여 새들에게 공급하여 주신다면 여러분이 병들 때나 노후에 필요한 것들을 베풀어 주시지 않겠는가?

우리가 앞으로 먹을 빵이나 입을 옷이 어디에 있나 하고 염려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성실하심과 친절하신 보살핌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지극히 적다는 증거이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7절)

여기에 주님께서 현세적인 것에 대한 근심에 대하여 말씀하신 세 번째 이유가 있다. 이 말씀은 질문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형식은 말하고 있는 내용을 더 강력하게 확언하거나 부인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여기에서 이 말씀은 강한 부정의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중에 그 누구도 염려하므로 자신의 키를 단 하 자나도 더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이 반박할수 없는 논증은 인간의 무력함을 드러내고 있다.

즉, 아무리 큰 야망을 가지고 있고, 또한 강력하고 지혜롭다 할지라도 그러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몸무게나 키에 이른 것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은 것이다.

어린 유아가 180cm나 되는 성인으로 자라난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한 자 한 자 자라서 성인이 되는가? 그 자신의 예견이나 계획으로 된 것이  아니다.

그가 자란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는 자라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자라났다"(매튜 헨리).

한 '자'(규빗)라 함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잰 수치로 18인치에서부터 21인치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사람의 몸의 구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계획하신 키에 도달할 때까지 한 자 한 자 더하여 주심으로써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의 작은 키에서 점점 크게 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사람이 이르게 될 정확한 키를 명하셨으며, 그 누구도 자신의 기술이나 염려나 노력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정해 주신 키의 한계를 초과할 수 없다. 그것은 창조주의 사역이다.♡

즉, 육체를 주신 창조주께서 키를 명하시고 자신의 섭리로 매일매일 자라게 함으로써 그 키에 이르게 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이 여러 가지 수단을 부지런히 사용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키를 한 자라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로 우리의 마음을 애태우는 것은 불필요하고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한다 해도 자신의 키를 변하게 할 수 없다. 키가 작은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고 잠을 자지 않고 그것에 대한 생각으로 괴로워하여 늘 어떻게 하면 한 자의 키라도 더 자라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키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므로  자신의 현재의 키에 만족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육적인 재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행해야 한다.

즉, (1) 우리는 이 세상의 풍부한 재물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

(2) 우리는 우리의 키에 만족해야 하듯이 우리의 상태에 만족해야 한다.

즉, 우리는 편리한 것과 불편한 것을 비교해 보아야 하며, 정해진 운명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고칠 수 없는 것은 최대한으로 활용해야한다. 우리는 섭리의 처분을 변화시킬수 없다. 그러므로 그 섭리에 묵묵히 따르고 순응해야 한다"(매튜헨리).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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