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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66]

En Hakkore 2024. 7. 23. 22:36

염려하지 말라 2(마 6:26,27)

"공중의 새를 보라."

우리가 특별히 공중의 새와 관련된 교훈을 배우고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그것들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이다. 새들은 사람이 사용하는 준비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는 염려나 근심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며, 땀흘려 일하여 먹으라고 명령받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굶어 죽지 않는다. 여기에 숙고해야 할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

하등 동물들과 공중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이 음식과 의복을 조달하는 방법은 그것이 비록 하나님의 무수한 지혜와 놀라운 섭리와 무한한 선하심과 성실하심과 온유한 보살핌과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긍휼을 여러가지 면에서 나타낸다 할지라도,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감독권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증거를 대준다.

공중의 새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는데 "어떻게 그들은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그 대답은 그들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자신들의 음식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욥 38:41).

"거기에는 크고 넖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마련하는 바라나이다"(시 104:25, 27)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시 145:1). 들짐승과 우는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시 147:9).

그러나 이성이 없는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들은 사람처럼 기도하지는 못하나 타고난 본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내려주신 음식을 구하고 또 그  음식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앙망하오니"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와 같은 말씀으로, 그것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온전하게 의탁하였으며 그것으로 만족하였다고 가르치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가치하게 된 동물들이 어떻게 그들의 원래의 상태에 인간보다 빨리 접근하게 되며 자연의 질서에 더 쉽사리 순응하게 되는가를 깨닫게된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것만을 구하고, 또 그것을 받았을 때는 쉽게 만족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간은 현세적인 것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의존하는 일에 관해서는 본연의 상태로부터 심하게 타락하였다

비록 인간이 이성을 부여받았고 또 하늘의 새들이 가지지 못한 수단들을 이용한다고는 하지만, 현세적인 것들을 얻는 것에 관심을 두거나, 그것을 이용하는 일에 관심을 두어 그의 마음은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사실은 사람이 동물들보다 더 타락하였고 포악하고 비열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의 본성이 너무도 타락했기 때문에 동물들보다 생존의 법칙을 더욱더 많이 거역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죄성에 대해 깊이 생각함으로 겸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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