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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46]

En Hakkore 2024. 7. 22. 21:19

성한 눈 1(마 6:22,23)

이와 같은 하늘의 지혜는 두 가지 활동을 한다.

첫째는, 다른 것들을 올바르게 분별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혹은 "서로 다른 것을 분별하며"(빌 1:9,10) 라고 하였다. 즉 악으로부터 선을, 땅의 것으로부터 하늘의 것을 분별하는 일이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거짓 목자들의 소리로부터 참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소리를 분별한다. 그것에 의해서 그들은 세례의 물과 모든 다른 물들 간에 차이를 두며, 성찬의 떡과 모든 다른 떡들을 (거기에 있는 주님의 몸을 분별함으로써) 구별짓는다.

그것으로 그들은 그들의 선택과 부르심에 대한 표적을 스스로에게서 얼마간 깨닫게 됨으로써 이를 분별해 낸다. 그것에 의해 이제까지 모든 일이 그 궁극적인 선을 이루도록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알아본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고전 2:15) 자연인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이 진정한 하늘의 지혜가 하는 두 번째 활동은, 매사에 있어 무엇을 하여야 하고 무엇은 하지 않아야 되는지, 행동에 있어 선은 무엇이며 악은 무엇인지에 대해 결정하고 판정내리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 지혜의 주요한 작업은 참된 행복을 결정하는 것임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거기에 사람의 전 생활이 맞춰져야 하는데, 그 행복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이다.♡

이 점에서 다윗은 자기 주변의 불경건한 무리들과는 너무도 다른 그의 지혜를 보여주었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이는 즉 행복에 대한 세상의 헛된 추구이다) 하오나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시 4:6).

믿는 자의 참된 행복이 여기에 있다. 이 점은 사도 바울의 경우에도 분명하다(빌 3:8).

이와 같은 것이야말로 우리의 지혜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가장 높은 단계의 모든 학식과 지성을 갖추었다 하여도, 참된 행복을 올바르게 결정하는데 있어 실패한다면 그의 총명은 곧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이 하늘의 지혜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우리가 이러한 행복에 도달하는 바로 그 수단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 성한 눈의 열매는 "온 몸을 밝게" 하는 것이다. 즉, 전 생활을 의의 길로 인도하고 선한 사역들로 가득하게 만듦으로써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나(지혜)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잠 8:20, 21).

그렇다면 우리가 이 참된 지혜를 소유하여 왔음을 확인하고자 애쓰며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긴급한 우리의 의무인가, 만일 이와 같이 하여 부여받은 마음이 그러한 분별의 힘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가 그에 대한 참여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자신의 심중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도록 매우 주의해야 함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시 111:10)이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경건한 경외심이다.♡

이 마음으로 인해 사람은 범죄하기를 두려워하며 매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염려한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경외로써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읽은 대로 그것을 자신의 영혼에 적용시킨다면, 그 말씀이 우리의 양심을 찾을 때 떨면서 불평 없이 겸손하게 자신 거기에 복종시킨다면, 우리는 이 참된 지혜를 획득하는 것이다.

다윗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하였으며, 그럼으로써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의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98절)라고 말할 수 있었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현명해지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식별력에 의지하기를 중지하고, 모든 일에 있어 말씀이 명하는 대로 따라야 할 것이다.♡

성한 눈, 즉 밝게 된 식별력 내지 참된 지혜를 부여받은 마음을 부지런히 추구해야 할 우리의 심각한 필요성은 본래부터 우리 각자가 온 몸을 어둠으로 가득차게 하는 나쁜 눈을 소유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서 두드러진다.

타락의 결과로 우리는 영적인 것에 있어 올바르게 판단할 힘을 잃었으며, 그리하여 악을 선으로 착각하고, 거부하여야 할 것을 선택하여야 할 것으로 오해한다. 자연인은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동료의 눈 앞에서 하기 부끄러워할 일들을 하는 행위를 자행할 것이다. 자연인은 하나님의 충족하심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창조자보다도 그 피조물을 훨씬 더 신뢰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인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무감각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아직 죄를 지을지라도 징벌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 확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도 스스로에 대해 보는 눈이 없다.

자기 자신의 어두운 상태를 깨닫지 못하며, 자신의 죄 많음과 무력함, 약함, 그리고 참된 행복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

이 나쁜 눈은 본래부터 우리 각자에게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는 하나님에 대해서건 우리 자신에 대해서건 바르게 판단할 능력이 없음을 상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일이야말로 참된 지식의 첫단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가치 없이 판단하고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애통해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타락하여 모든 행동을 혼란시키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은총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해야만 한다.

이 나쁜 눈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우리는 타락자들이 쫓아가는 미친듯한 무모한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지, 왜 그들은 죄에 그렇게도 혹하여 있으며 세상을 그처럼 사랑하는지, 어찌하여 그들은 잘못된 생각에 기만당하고 그릇된 교리에 사로잡히는 심각한 경향이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인간의 이성은 이제 완전한 빛을 잃고 있으므로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우리를 비출지라도, 그 요구를 누름으로써 우리가 그 빛을 따라 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어둠은 배나 더할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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