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144] 본문
성한 눈 1(마 6: 22-23)
"네 눈이 성하면," 바꾸어 말하면 "시각이 온전하면"이란 말이다. 이 말씀과 대조하여 다음 절에서 '나쁜' 눈, 즉 '사악한' 눈을 제시하고 있음으로 보아 '성한' 눈이란 곧 좋은, 혹은 경건한 눈이 된다.
그러면 좋은 '눈' 이란 어떠한 것인가? 분명히 그것은 새롭게 된 식별력, 깨끗하게 된 눈이며, 그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밝게 된 마음, 진리에 의해서 지배되고 조절되는 마음이다.
몸이 눈을 수단으로 하여 그 행동에 빛을 공급하듯이 마음은 그 활동이 오직 성령의 감화에만 응하도록 맞춰져 있다. '성한' 눈의 목적은 오직 하나,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이 말이 나와 있는 다른 구절(약간 다른 표현이지만)에서 확인된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Simplicity,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사도가 그의 일을 감당하는 데 있어 그를 지탱해 주는 기쁜 확신은 그의 진실함, 즉 '순전함'(불성실과 반대되는 의미에서)에 대한 자각과 영적인 깨달음에서 나온 경건한 진실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눈, 그것은 즉 목표이며 의도이다. 눈으로 우리는 자기 앞에 목적지를 정하고 목표하는 표적, 가고자 하는 장소를 정한다.
우리의 목표하는 바를 지속하며 우리의 행동이 따르도록 지시한다. 모든 것에 있어 우리는 우리의 눈에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신앙심으로 행한다.
이리하여 만일 우리 눈이 성하면, 우리가 성실하게 목표하고 있고, 올바른 목적지를 맞추고 있으며, 그리고 그 목적지를 향해 바르게 나아가고 있다면, 만일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순수하게 향하면, 그렇다면 눈이 성한 것이다.
사도 바울이 '네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요' 라고 말했을 때 그의 눈이 그러했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 점에서 틀리지 않다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모든 행동은 조절되고 너그러워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자신들을 평안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눈이 나쁘면, 즉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을 기꺼이 맞아들이기를 추구하는 대신에 우리가 사람들의 칭찬에 눈을 돌린다면,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체하면서 우리 자신의 영화를 꾀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추구한다는 이름 아래 자신들의 일을 모색한다면, 이는 모든 것을 결딴내게 된다.
모든 행위가 잘못되고 미덥지 못하게 될 것이며 그 주초부터 흔들려서 그 위에 지은 집은 온갖 악한 일만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매튜 헨리).
본문 말씀에 나와 있는 주요한 용어들의 의미는 이처럼 다양하다. 다음에는 문맥과의 그 연관 관계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사물에 대한 분별, 가치에 대한 평가, 땅의 일과 하늘의 일에 대한 실제적인 판단은 우리의 식별력이 하나님의 조명을 받았는지, 아니면 여전히 자연 그대로 어두운 가운데 있는지에 따라 아주 달리 결정된다.
밝은 식별력은 그 참된 성격과 가치에 따라 사물들을 파악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진실된 판단을 하게 하며 현명하게 선택하고 그것들에 관해 올바르게 행동하게 한다. 그러나 어두운 식별력은 사물들을 잘못 평가하게 하기 때문에 그 그릇된 선택과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 후자의 경우에 있어 사람 '안에 있는 빛' 은 인간 본래의 이성이다 그리고 그 이성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경로를 따라 나아가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현명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어둠이 얼마나 크겠는가!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65
'강해시리즈 > 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수훈 146] (0) | 2024.07.22 |
---|---|
[산상수훈 145] (0) | 2024.07.22 |
[산상수훈 143] (0) | 2024.07.22 |
[산상수훈 142] (0) | 2024.07.20 |
[산상수훈 141] (0) | 2024.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