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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130]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30]

En Hakkore 2024. 7. 17. 11:27

금식 2(마 6:16-18)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우리는 또한 이 교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적당하게 육체를 돌볼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반드시 피해야 할 두 가지 극단적인 일이 있다.

즉 육체에 대해서 지나치게 탐닉하는 것과 소홀히 하는 것인데, 이 나약한 시대에 과도한 탐닉은 더욱 위험하다. 폭식과 무절제는 모두가 죄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육욕을 자극하며 우리를 더욱 악한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는 말씀은 그러한 무절제를 금하고 있다. 반면에 영혼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구실로 "몸을 괴롭게 하는 것"(골 2:23)에 대해서도 우리는 경고를 받고 있다.

연약함과 무능력을 초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요구하고 계시는 육체의 보호란 육체에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적당한 관심을 가지는 것과,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육체에 알맞도록 절제하며 음식을 먹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우리는 또한 즐거운 기색을 항상 유지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의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육체적인 경솔한 언동을 삼가야 하는 한편 언제나 진지하고 침착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반면에 우리는 부자연스러운 엄숙함과 우울함을 나타내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외식적으로 허식적인 슬픔을 나타내 보이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본래 우울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이 신앙적인 일을 행하라고 우리에게 명한다면, 우리의 전반적인 태도에서 자연스럽게 즐겁고 만족스러운 마음을 표시하는 것은 분명히 우리의 의무일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그 신자들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세상 사람들의 거짓말의 거짓말을 논박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의무이다.

신앙을 고백하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비뚤어지고 슬퍼하며 침울해짐으로써 복음의 대의에 참으로 많은 해를 입혀 왔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을 통치하는 곳에 그는 모든 지성을 능가하는 평화와,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을 널리 베풀어 주신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가 믿는다고 신앙을 고백하는 그 진리의 효험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을 열어 놓는 일에 참으로 근면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를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그 계명들을 지키는 데에는 크나큰 상급이 있다. 그리스도의 멍에는 쉽고 그의 짐도 무겁지 않다는 것을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입증해 보일 수 있도록 간구하자.♡

그 진리는 우리를 노예로 만들지 아니하며 오히려 자유롭게 하고 그 지혜의 길은 기쁨의 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자.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18절).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만이 유일한 심판자시요 상 주시는 이가 되실 것이라는 세대주의자들의 편협된 생각을 경고하시는 말씀이며, 히브리서 12:23과 같은 구절은 이와 같은 생각을 분명하게 본박하고 있다,

창조의 사역에서 성부와 성령을 제외시키는 것이나(욥 33:4 등) 아들의 심판자적인 임무를 제한하는 것은 모두가 똑같이 그릇된 것이다.

실제적으로는 심의하고 판결하고 동의하는 문제와 관련된 최후의 심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정하실 것이며, 직접적으로 집행하시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칼빈은 가장 훌륭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만일 목사들이 지극히 성실한 마음으로 이 교리를 가르치지 아니함으로써 금식을 부지런히 실행하기는 하지만 잘못된 견해로 오염되어서 계속적인 타락이 있게 된다면, 금식을 전혀 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우리가 필수적으로 조심해야 할 일은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욜 2:13)라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쏟지 아니하고 죄에 대하여 참으로 슬퍼하지 아니하며 진지한 자기혐오와 참된 겸손과 진정한 슬픔이 수반되지 않는 금식은 귀하게 여기시지 않는다,

금식이 이러한 일들에 대한 부분적이고 보조적인 수단이 아니라면 전혀 쓸모가 없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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