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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21]

En Hakkore 2024. 7. 16. 10:53

금식 1(마 6:16-18)

이제 우리가 공부할 본문은 신앙을 고백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또 하나의 문제를 우리 앞에 제시해 주고 있다.

우리는 금식에 관한 설교나 '성경해석' 을 전혀 듣지 못하였으며, 지난 40년 동안 그 문제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 것을 거의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그 기록이 '거의 없다' 는 사실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교제를 해보면 우리의 경험은 우리들만의 독특한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위의 두 구절에 대해서 앞으로 두 장에 걸쳐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평소에 우리가 했던 대로 먼저 이 주제에 대한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의 가르침을 비교하면서 이 구절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총론적으로 다루어 보기로 하자. 그 다음에 이 구절을 좀 더 자세하게 연구하며 하나하나의 용어들을 설명하고 적용시켜 보기로 하자.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에서 "나는 금식에 대해서 언급해 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금식의 유익함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경시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불필요한 것으로 거절되고 있다.

반면에, 금식의 유용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곳에서 그것은 미신적인 행위로 쉽게 타락해 버리고 만다" 라고 말하였다..

수세기가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개선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훌륭한 종교개혁자가 직면하였던 바로 그 상황이 오늘날에도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로마 카톨릭교도들이 복음을 위한 수단을 곡해하여 그것을 특별히 그들의 종교적인 예배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올려놓았다면, 개신교도들은 극단적인 반대의 입장을 취하여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실행하였던 그것을 전체적으로 폐지해 버렸다.

이 종교의 의무를 수행하던 사람들 중 일부에서는 대단히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면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이 금식을 실천하는 일 자체를 반대하거나 중단시킬 이유는 되지 못한다.

우리 주님의 교훈 가운데는 신앙적인 금식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는 부분이 전혀 없고 오히려 권장하는 부분이 더 많다. 우리 앞에 있는 이 구절에서도 그는 분명히 이 관례를 비난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가운데에서의 위선을 경고하고 계신다.♡

그가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3절)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이 기도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암시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말라" 말씀하심으로써 그는 그의 제자들이 금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바리새인들이 금식에 대하여 악하게 곡해한 것을 비난하고 계시며, 또한 이 주제에 대하여 귀중한 교훈을 주고자 하신다.

어떤 심각한 문제에 대해, 특히 엄숙하고 슬픈 문제에 대해 마음이 심히 괴로움을 당할 때에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게 되며, 음식을 절제하는 일로써 우리의 가치 없음과 또한 비교적으로 이 세상일들의 무가치함을 깨달은 마음과 위의 것들에 관심을 두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표출된다.

전적인 금식이건 간에 모든 시대에 있어서 그것이 특별히 엄숙한 헌신의 시기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요나가 범죄한 도시에 대하여 (만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서지 아니하면)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을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왕과 그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사람이나 짐승이나...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욘 3:5~9)라고 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의 사건에는 우리가 주의해 보아야 할 많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 주제에 여러 가지 면에서 빛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을 하였던 그때는 일상적인 때가 아니라 지극히 중요한 때였다. 즉 하나님의 심판의 먹구름이 그들의 머리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던 때였다.

그 금식은 개인적으로 실행한 것이 아니라는 백성이 다 같이 참여하였던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낮아짐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으며 하나님께 '힘써' 부르짖기 위해 취한 방법이었다.♡

그것은 주님의 어떤 분명한 계명에 응하여 실행한 의무가 아니라 그들이 자발적으로 또한 능동적으로 행한 것이었다.

요나서 3장의 끝 부분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잠정적으로)"라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바와 같이 금식의 목적은 그들에 대한 하늘의 진노를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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