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90]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90]

En Hakkore 2024. 7. 14. 11:08

율법과 사랑 1(마 5:43-48)

앞에서 우리는 랍비들이 성경을 악용하고 있는 두 경우를 보았다. 그 중 하나는 그릇된 해석이며, 다른 하나는 논리적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이나 그릇된 결론을 끌어내는 두 경우로 이 악용은 위험하고 피해가 크다.

따라서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들은 이 점을 부지런히 경계해야만 한다.

성경에 쓰이는 용어들이 올바르게 정의되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성령이 어떻게 해서 이 특수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는가를 알기 위해 가끔 수많은 구절들을 끈질기게 관찰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리를 간과해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란 명령은 한층 더 엄숙하게 들린다.♡

또한 앞에서 우리는 거짓 선생에 대한 뚜렷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거짓 선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쁜 쪽으로 적용시켜 청중을 의도적으로 타락하도록 방조하며 청중의 찬동을 얻기 위해 성경을 왜곡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육체를 따라 형제가 된 자들에게는 사랑과 선행을 베풀도록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방인에 대해 적대감을 품는 것은 그들의 본분이라고 가르친다.

그러한 교훈은 타락한 인간 본성의 악의적이고 이기적인 원리에 들어맞는 것으로 유대인들이 보편적으로 그러한 교훈의 영향을 받아 행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그들은 자기들의 동포에게는 쉽게 동정을 표시하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적대감을 갖는다"(타키투스)

한편 바울은 그들을 "모든 사람들에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들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살전 215, 16) 라고 묘사하고 있다.

끝으로, 우리는 그릇된 교훈의 열매, 즉 선한 행실을 타락시키는 악의 전파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강렬한 감정의 소유자로, 친구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원수를 강렬하게 미워하였다. 즉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자기들이 가르친 제자들의 편견과 일치하게 곡해시킴으로써 죄악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생각도 그러하기" 때문에 그릇된 생각을 가진 자는 필연적으로 그릇된 행동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 원리에 대한 두드러진 예를 로마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곧 그들의 잘못된 유전으로부터 비롯된 나쁜 습관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배 처소' 를 다른 건물보다 더 거룩하게 여겼다. 그 결과 많은 미혹된 신도들은 '교회'나 '성당'에 들어갈 때 외에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란 주님의 말씀에는 모세의 가르침에 반대한다는 것도, 다른 어떤 의미를 첨가시키고 있지 않다는 것도,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으로 보아 명백하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타락으로부터 구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의 높은 정신과 뜻을 밝혀주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사랑은 소위 우리가 '자연적 애정' 이라 부르는 것을 훨씬 능가한 것이다.

친족에게 베푸는 사랑은 이교도나, 더 낮게는 동물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단순한 자연적 본능이나 감정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사랑은 거룩하고, 공평하고, 영적인 것이다.♡

이것은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 39)의 두 구절을 분리할 수 없게 연결해 놓은 사실에서 명확해진다. 즉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때와 같은 사랑을 이웃에게 베풀어야 한다.♡

"나는(성육신하신 하나님, 곧 최초에 율법을 주신 자)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44절).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세 가지 내용을 말씀하신다.

첫째, 그는 분명하게 '이웃' 을 친구와 아는 사람에게 한정시킨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실수를 반박했으며, 그 말이 원수까지도 포함한 포용력이 있는 말임을 입증했다. 즉 진실로 하나님의 계명은 "심히 넓은 것이다"(시 119:96).

둘째, 그는 진리와 정반대인, 원수를 미워하라는 악한 가르침을 솔직하게 거부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미워하고 상처를 입힌 자까지도 사랑하라 명하셨다고 주장하셨다.

셋째, 그는 '사랑'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히 밝힌다. 즉 사랑은 거룩하고 내적이고 영적인 애정으로서, 그것은 경건하고 친절한 행위로 표현된다고 밝히셨다.

이제 우리는 의혹의 그림자여서 완전히 벗어나 도덕적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명령한 도덕법임을 확신하게 된다. 인간 중 그 누구도 "원수를 사랑하라" 는 것과 같은 교훈을 일찍이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73

'강해시리즈 > 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수훈 92]  (0) 2024.07.14
[산상수훈 91]  (0) 2024.07.14
[산상수훈 89]  (0) 2024.07.14
[산상수훈 88]  (0) 2024.07.14
[산상수훈 87]  (0) 202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