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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1] 위대한 명령(여호수아 1:1-9)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1] 위대한 명령(여호수아 1:1-9)

En Hakkore 2024. 2. 11. 10:28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는 그 옛날 여호수아에게 주신 것이며 동시에 지금 나에게 주시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벧후 1:4) 중의 하나이며, 따라서 내가 믿음으로 붙잡고 누릴 수 있는 약속인 것이다.

사도께서 동일한 약속을 적용시키는 것을 주목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그러므로" 라는 단어는 약속을 근거로 하는 추론임을 시사하며,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람을 향한 용기라는 이중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갖가지로 다양하게 적용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사도가 도출한 결론은 약속하시는 분의 성품에 근거한 것이었고, 믿음은 언제나 그렇게 사고해야 한다.🫰

하나님이 무한히 선하시고 신실하시며 전능하시고 불변하시므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더불어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고 하며, 요나단과는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고 하며, 여호사밧과 더불어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대하 20:6)라고 하며, 바울과 더불어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라고 담대하고도 확신 있게 선언할 수 있다. 아멘 아멘!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여기서 표현이 복수에서 단수로 바뀌는 것을 주의 깊게 살피기 바란다. 곧 일반적인 원리들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여기고 그렇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명령들을 우리 개인에게 적용시켜야 한다. 주 예수께서 사탄에게 공격을 받으실 때에 신명기 6:13을 개별적으로 적용시키셨듯이 말이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하나님의 약속들과 계명들을 우리 자신들에게 개인적으로 적용시킬 때에만 비로소 우리가 그런 약속들과 계명들에 믿음을 섞어서 적절히 유익하게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가 시편 118:6의 인용이라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이 인용문에서 사도는 구약성경의 언어가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으며, 따라서 그것을 전용하는 것이 지극히 합당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가르치고 있다. 시편 기자가 말씀한 내용을 "우리가 그대로 담대히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윗은 쓰라린 괴로움 중에서, 그의 원수들이 그를 삼키려는 위기의 상황에서, 여호와를 향한 그의 신뢰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피조물의 미약함을 여호와의 전능하심과 대조하면서 마음에 담대함과 힘을 얻었던 것이다.

아, 하지만 여러분은 여기에 어떤 것이 결부되었는지를 분명히 감지하는가? 이는 곧 다윗이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게로 생각을 완전히 돌렸음을 의미한다. 그가 눈에 보이는 것이나 혹은 이성이 아니라 믿음에 근거하여 처신했음을 의미한다.

그의 마음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의미가 있으니,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자신과 맺으시는 관계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영적인 결속을 인식하였고, 그리하여 "주님이시요, 나의 구속자시요, 나의 아버지시라면, 내가 쓰라린 곤경 중에 있거나 나의 원수가 나를 삼키려 하거나 나의 양식이 거의 바닥났을 때에 그가 나를 위해 역사하실 것을 믿고 나아갈 수가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나를"은 믿음의 언어요, "나를 돕는 이"는 믿음의 확신이 주저함 없이 도출해낸 결론이다. 하나님은 흔히 그분의 섭리들을 주도하사 우리를 시련의 상황 속에 처하게 하시고, 그 가운데서 우리에게 믿음을 발휘할 합당한 기회를 베푸시고 그 일을 통해 영광을 받고자 하시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는 분명한 확신을 품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는 것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 다윗은 그 수많은 막강한 원수에게서 눈을 돌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진정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을 좌절시키시는 법이 없다.

이러한 원리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실례를 살펴 보자.

한 번은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했다(대하 20:1).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양을 치러 오나이다" 라는 보고가 그 왕에게 올라왔고 그는 이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여호와께로 낯을 향해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고 공포하였다. 그리고 온 회중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그는 여호와께 기도로 간구하였고,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12).

그들이 헛되이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14-26절에서 그 이후의 결말을 읽어보라. 그들 자신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는데,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셔서 무너지게 하시고 스스로 완전히 멸절되게 하신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