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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75]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75]

En Hakkore 2024. 7. 13. 22:51

율법과 맹세 2(마 5:33-37)

끝으로 신약 아래에서 맹세가 부당한 것이라면 하나님은 어떠한 형태로든 그 맹세가 지속되지 못하도록 하여 자기 백성이 그 명령과는 반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세세토록 살아계신 자를 가리켜 맹세"(계 10:4~6) 하도록 하시면서, 맹세를 지속시키셨다.

마태복음 5장에 나타나 있는 것들을 통하여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두 가지 특별히 중요한 규칙들이 있으며, 그것들에 주의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로, 보편적인 단언과 부정을 언제나 보편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그 경우와 상황과 다루고 있는 주제에 따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말로써 표현되어 있는 것들은 반드시 그 문맥에 따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22)라고 말하였을 때, 그의 말을 아무 제한 없이 받아들이면 그가 신성모독자에게는 신성모독자가 되었다는 뜻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그가 다른 사람들의 약함에 참여한 것은 대수롭지 않고 죄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제한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것은 그가, 신성모독적으로 쓸데없이 또는 피조물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하신 것임을 (그 다음 말씀으로 보아) 분명히 알 수 있다.♡

둘째로, 이것은 성경을 해석할 때 실제로 사용되는 규칙인데, 어떤 내용을 어느 한 구절에서는 금하였으니 다른 구절에서는 허용하고 있을 때는 그것이 두 경우에만 말해진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어떤 특별한 형식이나 원인, 목적, 이유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 마태복음 5:34에서는 맹세하는 것이 금해져 있지만 다른 구절에서는 허락되어 있고 그에 대한 실례들이 또한 우리에게 제시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에 담긴 의미는 절대적으로 맹세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악하고 쓸모없는 맹세는 정죄되지만 올바른 이유나 정당한 목적에서 맹세하는 것은 인정된다는 것이다.♡

맹세를 하는 것은 법정의 경우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출 22:11) 바울의 실례들과 그의 편지들이 다른 방법으로 입증해 주고 있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적인 맹세들도 완전히 정당하다.
보아스는 개인 자격으로는 룻과 결혼하겠다는 그의 약속을 맹세로써 확정하였다(룻 3:13).

오바댜는 일개인으로서 의로운 자였고 여호와를 두려워하였는데 그는 엘리야에게 확신시키기를 원하였던 사실을 맹세하여 말하였다(왕상 18:10).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성급하고 무분별하고 제멋대로 또는 하찮게 맹세를 해서는 안 되며 필연적인 경우에만 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규칙이라고 생각한다"(요한 칼빈).

열왕기상 8:31, 32에는 맹세의 두려운 엄숙성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3계명을 범하였을 때 그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깊히 명심해야 한다(렘 5:7-9; 슥 5:4)♡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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