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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74]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74]

En Hakkore 2024. 7. 13. 22:51

율법과 맹세 2(마 5:33-37)

첫째로, 맹세는 본질상 죄가 되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의 권위로써도 결코 금지된 것이 아니라는 것(신 6:13)을 지적해야 한다.

맹세는 단순히 우리의 증거의 참됨과 우리의 약속들의 진실성에 관하여 전지하신 분(즉 마음을 살피시며 이 세상의 위대한 통치자이시고 속임수와 거짓을 벌하시는 분)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이 가르쳐 주기 때문에, 단순히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여 올바른 일이 그른 일이 될 수는 없다.

둘째로, 이사야서 45:23의 예언은 신약성경의 신자들에게 속하며, 또한 그들에게 분명히 적용이 된다.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을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로마서 14:11을 보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규정하셨던 일과 관계가 있다(신 6:13). 선지자는 복음의 날에도 온 세상이 이것을 지킬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떠한 환경에서든 거룩하신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이 부당하면 분명히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 통하여 이방인들을 부르는 것과 그들의 회심에 대하여 예언하였었다.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12:16).

그러나 그들이 맹세를 하는 것이 부당하고 또한 그들이 정당하게 명령을 받았을 때에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가 아니라면, 이것은 이방인들 가운데 회심한 자들을 향한 명령이나 격려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셋째로, (앞 장에서) 마태복음 5: 33~37을 설명하며 상세히 밝힌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그 말씀을 통하여 율법에 반대가 되는 맹세만을 정죄하고 또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악한 일들을 금하고 계셨을 뿐이다.

그는 단지 유대인들의 잘못을 드러내고 계셨을 뿐이며 또한 바리새인들의 악한 곡해를 논박하셨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이 구절에서의 주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산상수훈 중 이 부분을 시작하면서 그리스도께서 크게 강조하며 제시하신 원칙들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17, 18절).

맹세가 '율법' 이나 '선지자' 에 속한다면(또 실제로 그리하였다), 그리스도의 목적은 그것들에 폐지하려는 것이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율법을 주시고 완성하시는 분이 그것을 파괴하는 자일 수는 없다.♡

넷째로, 재판상의 맹세에 관하여 그리스도 자신이(우리가 본받아야 할 - 벧전 2:21) 한 가지 실례를 남겨 주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 계셨을 때에, 그는 전에는 그를 고소한 자들이나 대제사장에게 대답하기를 거절하였던 것과는 반대로 가야바가 그에게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라고 말하였을 때 그에게 즉시 대답하셨다(마 26:63, 64).

다섯째로, 위대한 사도인 바울은 증인으로서 하나님을 부르며 자기의 증거를 거듭 확정하였다(고후 1:23; 갈 1:20; 빌 1:8 등). 이러한 구절들을 통하여 그는 지극히 엄숙하게 자기 자신과 자기의 진실성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 참됨을 맹세하였다(롬 9:1 참조).

그가 맹세하였던 것은 그가 가르친 교훈에 관해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교훈은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그 교훈의 권위와 확신을 받았기 때문에 맹세를 통한 확정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맹세하였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의 마음과 목적에 관해서였는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하여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맹세를 하여 진리를 강조한 것은 그것이 교회의 유익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로, 히브리서 6:16은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고 말한다.

이 구절을 통하여 이방인들의 사도였던 바울은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3:1) 거룩한 형제들에게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용례를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가지 금언, 곧 자연법칙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입증되어야 했다. 그리고 사도의 편지를 받은 자들, 즉 복음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타당성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실천하거나 그 실천한 결과가 부당한 것이어서 그들에게 효력이 없는 것이었다면, 그의 말은 이 경우에만 한정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맹세에 대해 설명하려는 그의 전반적인 의도가 심히 약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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