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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72]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72]

En Hakkore 2024. 7. 13. 22:49

율법과 맹세 2(마 5:33-37)

첫째로, 맹세의 본질에 대하여 살펴보자.

맹세는 진리의 증인과 거짓말의 복수자이신 하나님을 부름으로써 의심스러운 일들에 대하여 종교적이고 필연적인 확정을 하는 것이다.

맹세가 확정이라는 것은 히브리서 6:16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데, 그곳에서 성령께서는 같은 내용을 확증하고 계신다. 또 맹세가 종교적인 확정이라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일부분이 되며, 맹세를 통하여 하나님께 호소한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이사야서 19:18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것" 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 전체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필연적인 확정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엄숙한 해결이 필요 없는 사소한 문제나 일들에 관계되는 맹세는 부당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증인과 복수자로 불리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맹세의 형식과 모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맹세하는 사람은 진리의 하나님과, 거짓말을 증오하시는 자로서의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그의 완전하심을 인정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맹세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진리에 대한 외적인 증언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맹세를 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말해야 한다.

둘째는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능하신 임재에 대한 고백,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 심판자, 거짓의 복수자이심을 지극히 엄숙하게 인정한다.

셋째는, 우리의 양심 곧 우리가 맹세한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입증해 주시기를 바라며 드리는 기원,

넷째는, 저주, 이를 통하여 맹세한 자는 그가 거짓 맹세를 하였다면 하나님의 형벌이 자기에게 임할 것을 바라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거짓의 복수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분명히 맹세는 경솔히 해서는 안 되며,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있어서만 맹세를 해야 되며, 아주 엄숙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제3계명을 거스르는 것이 되며,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두려운 죄를 범하게 된다.

둘째로, 맹세의 의도는 진리를 알고 소유하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의 이름을 신앙적으로 부름으로써 우리가 확증하거나 부인한 것을 엄숙하게 확정하는 데 있다.

우리가 맹세를 할 때에 하나님의 이름으 부르는 한, 이것은 그가 요구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그에 대한 예배의 한 부분이 된다.

어떤 사람이 맹세를 통하여 인정되었을 때, 그는 그 문제에 있어서 유일한 재판관으로서의 주님께 호소하였으므로 지상의 법정에서 책임이 면제된다.

어떤 특별한 표현 방식에 의해서 하나님에 대한 호소와 그에 대한 기원을 한다는 것이 맹세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것은 아니다. 거기에서 사용된 표현 방식들이 그 문제와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이 기원이요 호소의 표시로서 인정되고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맹세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적힌 책에 한 손을 놓고, 다른 손은 하늘로 향하도록 드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것 같다. 그러나 증언한 후에 성경책에 입 맞추는 것은 필요 없고 적당치 못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셋째로, 정당한 맹세들의 조건들 혹은 특징들에 대한 것을 살펴보자.

이것들에 대하여는 선지자들이 명백하게 표현하고 있으므로 이것들에 덧붙이거나 이것들에서 빼어낼 필요는 없다.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렘 4:2).

거짓말과 허언대신 '진실' 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이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에 대한 증인이 되시도록 부르고 있으며, 이것은 그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정(정의)' 해야 한다. 우리는 경솔하고 성급하게 또는 공정하고 충분한 근거가 없이 맹세해서는 안 된다. 확정되어야 할 의심스러운 문제와 맹세의 엄숙한 성격, 그리고 맹세를 말하는 것과 관계하여 실제로 맹세할 때에는 식별력과 신중한 사려분별이 있어야 한다.

'공의' 로 맹세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동료들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가 확정하고자 하는 것은 의로워야 한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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