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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73]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73]

En Hakkore 2024. 7. 13. 22:50

율법과 맹세 2(마 5:33-37)

위에 있는 조건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때와,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들이 있는 곳에서와, 또한 크든 작든 인간 사회의 평화가 이 문제들의 올바른 결정에 좌우된다면,

정당하게 부름을 받은 신자가 이 논쟁을 끝맺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가 알고 있는 진리를 확정하는 것은 합당하고 적당한 일이다.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자연스러운 예배의 일부분이며 우리의 본성도 그것을 가르쳐 준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모범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모세의 율법(창 22:16) 이전과 이후에도 여러 번 맹세를 하셨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기 본성으로부터 맹세의 합법성과 책임을 이해하지 못하였더라면 분명히 그들에게 이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며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옛적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모범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고 더욱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시내 산에서 율법이 주어지기 훨씬 전에 하나님과 아주 가까이서 동행하였던 자들이 이 경우에 따라, 또는 합법적으로 그렇게 해야 할 근거가 있을 때는 서로 엄숙하게 맹세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맹세하였고(창 21:23, 24), 자기 하인에게도 맹세하도록 하였다(창 24:8, 9). 이와 마찬가지로 야곱은 라반과 맹세하였다(창 31:53). 또 요셉 역시 그의 아버지에게 맹세하였다(창 47:31).

그러나 이러한 실례들이 모세의 율법적인 제도들과 아무 관계가 없으므로 오늘날에도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을 복음이 정죄한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는 없다.

어떤 사람은 앞의 내용이 너무도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러한 사람은 아무 어려움도 없는 곳에서 어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고 명백한 진술을 왜곡시키게 될 것이다.

비록 신앙을 고백하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주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였다 할지라도, 그 점에 대하여 잘못을 범한 사람들이 있었다.

퀘이커파와 그 밖의 소수의 사람들은 신약성경이 맹세하는 것을 분명히 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고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약 5:12)는 말씀에 호소한다.

그들은 이러한 구절들이 어떤 환경에서든지 전혀 맹세하지 말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땅의 군주들이 명령하였을 때조차도 맹세에 대한 증인이 되기를 거절하였다.

야고보서에서 인용한 말씀은 마태복음 5:33~37에서의 우리 구세주의 말씀에서 비롯되었으며, 그와 관계가 있고 또한 그것은 똑같은 문제에 대한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을 되풀이하여 가르치는 권고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 경우에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으며 그 말씀을 근거로 한 잘못을 드러내고 논박 하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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