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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61]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61]

En Hakkore 2024. 7. 12. 10:53

율법과 간음 2(마 5:27-32)

"이 세상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성숙하게 명상함으로써 우리는 자기를 부정하고 죄에 대해 고통스러럽게 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런 일들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요구가 겉으로는 가혹한 것이지만 그 내면에는 온유한 자비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의 안전과 유익과 축복이 고려되어지고 있으며, 또한 성령의 은혜와 위로들은 그것을 실천할 수 있게 해주며 위로해 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심한 허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부지런히 지켜야 하며, 우리의 눈과 우리의 모든 감각과 기능으로 하여금 범죄하게 하는 것들에 미혹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순결과 자기 부정의 지극히 엄격한 규칙들이 이 세상에 살아갈 동안 참되고 견고한 위로에 도움이 되는 것을 체험에 의하여 깨닫게 될 것이다"(토마스 스코트).

이 권고들을 통하여 주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우리 몸의 감각과 지체, 특히 눈과 손을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엄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우리는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네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잠 4:25).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의 눈을 말씀의 규율에 따라 명령받아야 한다는 말인데, 그것은 우리가 걸어 나아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많은 엄숙한 실례들을 통하여 이 규율에 주위해야 할 필요성을 알 수 있다. 하와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금단의 실과를 쳐다본 것은 그녀의 마음에 죄를 짓게 한 문이 되었다.

함은 벌거벗은 아버지를 쳐다보았기 때문에 저주받았고(창 9장),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소돔을 보았기 때문에 소금 기둥이 되었으며(창 19장), 벧세메스 사람들은 주님의 계시하신 뜻을 거역하고 주님의 궤를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오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삼상 6장).

이러한 경우들은 우리가 어떤 것을 바라보기 전에 일을 멈추고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에 둘 다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말해준다.

다시, 그리스도의 이 같은 권고들을 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지극히 고통을 주고, 또한 일시적으로 큰 손실을 가져다준다 할지라도 모든 죄악의 기회를 피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마른 나무나 삼과 같은 것이어서 불이 닿자마자 타버릴 것이다.

선원들이 바다에서 암초와 모래톱을 피하기 위해 계속 감시하고 있듯이 우리도 죄를 짓게 하는 모든 기회를 조심하여 피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라도 자아를 부인해야 하며, 끊임없이 경계함으로써 마음을 지켜야 하며, 마음속에서 죄가 싹트기 시작할 때 잘라버려야 하며, 죄를 짓게 하는 유혹은 피해야 하며,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 하는 친구를 멀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정욕을 채우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끊임없이 은혜를 구해야 한다.♡

여기에서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계시는 임무는 억제하는 일, 곧 우리의 악한 정욕을 죽이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이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싫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경고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불법적인 음란한 생각으로부터 해방하여 자기들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전적으로 그들의 능력을 초월한 일이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신다.

즉, 너희 말대로 그것이 불가능하고 너희 정욕을 다스릴 다른 방법이 없다면(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우리의 정욕을 다스릴 수 있다). 죄를 범하는 너희 지체를 잘라 버리는 것이 너희 영혼을 영원히 타락케 하는 지체를 사용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수술이 비록 고통스럽고 잘려 나가는 것이 슬픈 일이라 할지라도 이 일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긴급한 일이라고 믿게 된다면, 썩은 다리를 절단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우리 중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영혼의 구원에 필수가 되는 억제하는 일은 어찌하여 거절하고 있는가? 그러한 것을 피하라고 시험받게 될 때에는, 피하지 않을 경우 몸과 영혼 둘 다 지옥에서 영원 고통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죄가 되는 모든 것을 단호히 피하고 거절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를 유혹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본래 합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전적으로 삼가야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술을 좋아한다고 하자. 그것은 그의 입맛에 맞으며 그가 중노동을 한 후에 그를 유쾌하게 해준다. 그러나 그는 이 맛이 그를 방종으로 가도록 부추겨 왔으며 술을 계속해서 마시다 보면 항상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유혹에 굴복해 있다. 그러한 사람의 의무는 무엇인가? 우리 주님에 의하면 그의 의무는 분명히 술을 완전히 끊어 버리는 것이다.

즉, 이 명백한 원칙에 의하면 아무리 고통스럽게 생각된다 할지라도 그가 술을 끊음으로써 입는 손해는 과음으로 말미암아 그가 예속되어 있는 죄에 비할 바가 아니며, 심지어는 지옥에서 받을 영원한 형벌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

이와 같이 그가 그의 의무로써 술을 끊는다면 그는 유혹 앞에 넘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그가 반대하여 그 유혹에 굴복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존 브라운)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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