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62]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62]

En Hakkore 2024. 7. 12. 10:54

율법과 간음 3(마 5:27-32)

대부분의 저작자들은 마태복음 5장 31절과 32절을 별개의 단락으로 구분짓는다. 그러나 서로 다른 면을 취급하고 있긴 하지만 똑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고 똑같은 죄를 견책하고 있으므로 그 말씀은 27-32절로 이루어지는 단락에 속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간음의 일반적인 제목으로 또 다른 죄가 생각나는데, 그것은 곧 모세의 율법을 심하게 왜곡시켜 함부로 이혼하는 죄이다.

제7계명의 엄격함과 영성을 보여주신 뒤에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기회를 타서 당시에 행해지던 방종한 행동과 생각들을 혼인의 취소와 관련시켜 정죄하셨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정치적인 법규 중 하나를 역이용하여 지극히 사소한 이유를 핑계 삼아 이혼하는 것을 묵인하였는데 주님께서는 이것을 견책하셨다.

이와 같이 하여 주님께서는 실제로 제7계명을 그 본래의 위치로 되돌려 놓으시고 완전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말씀에서, 우리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는 그리스도 왕국의 의와 큰 탁월성에 대한 세밀한 실례를 본다.

영성이 약해지는 곳에서 도덕성 또는 타락한다는 것은 불변의 원칙이다. 모든 역사는, 경건이 사라질 때 신성한 혼인의 법규가 경시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의 시대에도 그와 같은 예를 보는 것은 심각하고도 슬픈 일이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요구에 점점 무관심해지기 때문에 혼인에 대한 신성한 의무를 점점 과소평가하게 되고 등한시하게 된다.

어떤 기독교 국가에서 혼인의 법규를 함부로 고치기 시작하고 이혼법을 좀 더 신축성 있게 만들 때 그러한 현상은 그 나라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고대 역사를 살펴보면 그리스와 로마 제국이 붕괴되기 이전의 수십 년 동안 혼인이 중요시되지 않았으며, 여자들이 그들의 손가락에 낀 반지의 숫자로 이혼한 횟수를 세는 일이 예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교도들이었기 때문에 그러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이다. 그러나 '고도로 문명화 되었다고' 자처하는 우리 현대인들은 어떠한가?

인성은 세상 어디에서나 똑같으며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질 때 도덕적 타락은 쉽게 범람하게 된다. 선지자들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님께서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그 여자에게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요 4:18)라고 말씀하신 것을 예외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나라에 두루 퍼져 있던 병폐를 나타내는 이야기로 생각해야 한다.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마 5:31).

이혼에 관한 원리의 법규는 신명기 24:1-4까지의 말씀에 나와 있다. 신학의 주류를 이루던 학파들 가운데 한 학파(힐렐 학파)는 남자가 어떤 이유로든지 그의 아내를 쫓아낼 수 있다고 가르쳤다.

외경의 기록에서는 "시락의 아들의 말이다: 네가 아내를 버리고자 할 때 그녀가 나가려고 하지 않거든 이혼 증서를 주어 내어보내라"고 하였다(집회서 25:26).

이것은 외경이 성령에 의해 영감받지 않았다는 명백한 표시 중 하나이다. 요세푸스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율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 아내와 이혼하려 하는 자는 어떤 이유로든 간에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주도록 하라. 또한 그는 아내가 세 아이를 낳은 후에 자신이 그녀의 행실을 기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아내를 쫓아냈다고 고백했다.

모세는 실제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정한 경우에는 더 사악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이혼을 허락하도록 명령받았다.

그러나 임시로 묵인해 주었던 이혼은 바리새인들에 의해 계율로 변화되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그 죄악과 자기 본위의 욕망에 빠지도록 승락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들은 위선자들이었기 때문에 '이혼 증서'와 관련하여 모세에게 순종하는 것을 크게 자랑하였다.

탈무드의 기록들은, 비록 그것들이 이혼의 정당함을 묘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할지라도, 이혼증서는 반드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열두 줄로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증거의 형식을 엄격히 제한하였다.

그러한 것은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 어리석은 일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20

'강해시리즈 > 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수훈 64]  (0) 2024.07.13
[산상수훈 63]  (0) 2024.07.13
[산상수훈 61]  (0) 2024.07.12
[산상수훈 60]  (0) 2024.07.12
[산상수훈 59]  (0) 2024.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