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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54]

En Hakkore 2024. 7. 12. 10:48

율법과 간음 1(마 5:27-32)

우리는 다시 한 번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적인 요구와, 그의 타락한 피조물들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저급한 규범 사이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사람들의 신앙은 단지 정치적일 뿐이다. 즉, 선과 악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한 그들은 작은 일에도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잔과 대접의 겉이 깨끗하기만 하면 그들은 그 안에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할지라도 개의치 않는다(마 23:25, 26). 시민들이 외적으로 법을 준수하기만 하면 그들의 마음속에 죄악이 들끓는다 할지라도 그 나라는 만족한다.

이것은 온 세상의 심판자이신 주님의 판단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잠 4:23)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는 것을 제일 귀중히 여기신다. 하나님을 보는 자, 곧 하나님과 친교를 이루고 영원히 하나님을 누리는 자는 오직 "마음이 청결한 자" 뿐이다(마 5:8).♡

우리는 여기에서 많은 범죄자들의 도피처가 되고 있는, 비굴한 문자주의에 대한 실감나는 경고를 볼 수 있다. 이 경우에 바리새인들은 말씀의 문자에는 접근하였으나 슬프게도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다.

가톨릭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를 고집함으로써 "이것은 나의 몸이다"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해 그들의 잘못된 화체설의 교리를 정당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유니데리언들은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요 14:18)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아들이 본질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고대의 랍비들은 제7계명의 영적인 충만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말씀의 외적인 가치로만 제7계명을 해석하였다. 전천년주의자들은 말씀의 의미를 확실히 하는 대신에 비굴한 문자주의나 말씀의 단순한 뜻으로 기만당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라.

여기에서 교회의 위대한 선생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명은 "심히 넓다"는 것과(시 119:96), 인간의 말이 입술 위에 있는 것보다 하나님에 의해 이용되어질 때 그 의미가 훨씬 더 충만하고 풍요롭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심으로써 성경 해석의 귀중한 기준이나 규칙을 제시해 주셨다.

이 사실만으로도, 하나님의 종들이 구약성경의 예언들을 말하고 영적으로 해석할 때 그들이 구약성경에 없는 예언들을 말하고 있으며, 그 예언들의 분명한 의미에서 부당하게 벗어나고 있다고 반대하면서 비난하는 자들을 침묵시키기에 충분하다.

주 예수께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고 단언하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제7계명은 음란한 눈빛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당신은 거기에 나와 있지 않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항의하였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 특정한 죄가 특별히 가증한 죄라는 사실에 대해 몇마디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간음은 혼인을 깨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불순종을 가볍게 생각했던 바리새인들까지도 간음죄를 정죄하여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 대해서는 죽이라고 소리쳤다(마 15:4-6; 요 8:4, 5).

이 죄악이 중한 것은 그것이 남편과 아내와 하나님 사이에 세워진 엄숙한 언약을 깨뜨리는 것이며, 귀중한 정결을 강탈하는 것이며, 몸을 더럽히고 영혼을 파괴시키며, 후손에게까지 하나님의 벌을 받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욥은 이 죄악에 대하여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 (욥 31:12)이라고 말하였다.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 10).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히 13:4).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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