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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42]

En Hakkore 2024. 7. 11. 11:31

그리스도와 율법 3(마 5: 17-20)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영혼의 의와 마음의 순결함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의 신앙에서 우리는 이 세상 전체에 퍼져 있는 사람들의 본래의 신앙에 대한 실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즉 그것은 외면적 행위의 신앙이 복되고 영원한 세계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앙이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이 사실을 부인하지만 행동에 있어서는 그것을 실제로 행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육체만을 가지고 기도하는 집에 오는 것이지 그들의 영혼조차 오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들은 그들의 입만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 '영과 진리' 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몰두하는 일이나 새벽기도회에는 꼼꼼한 사람들이지만 전력을 다해 자기 마음을 지키는 데에는(잠 4:23)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부분의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외적으로 강포한 행위를 삼가지만 그들의 이웃에게는 그들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림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좋은 평판을 잃게 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도둑질하는 것은 감히 생각하지 않으나 자기들의 선을 거짓 선전하며 자기들의 고객들을 속이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보다는 사람의 율법을 어기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요구하고 계시는 그 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경에서는 세 가지 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첫째로, 아담이 그의 창조주의 손을 떠나기 전에 갖고 있었던(전 7:29) 원래의 의가 있는데 오늘날은 날 때부터 그 의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둘째로, 전가된 의(롬 4:6)인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얻는 칭의의 전체를 가리킨다.

셋째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때 우리에게 부여해 주시는 의이다(엡 4:24).

옛날 해석가들의 대부분은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5:20에서 언급하신 의는 이들가운데 두 번째 의를 가리킨다고 결론지었으나 우리는 이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하늘에서의 죄인의 자격은 그의 믿음에 따라 그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기업에 대한 경험적인 만족이 있을 것이며 우리는 중생과 성화를 통하여 이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필포트(J. C. Philpot)가 마태복음 5:20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그들을 위해서 율법에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세우신 외면적인 의를 의미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우신 내면적인 의를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외적인 예복에서 뿐만 아니라 내적인 것에 대해서도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시 45:13).

여왕에게는 두 종류의 의가 있다. 즉, 그녀에게 전가된 의는 그녀의 외적인 예복인 '금으로 수놓은' 옷이며, 부여받은 의는 그녀로 하여금 '모든 영화를 누리게' 하는 내적인 장식이다. 이 내적인 영광은 모든 선물과 은혜를 갖춘 마음속에 있는 새 사람이다."

만일 교회가 그 머리를 따른다면 그 머리는 외적으로 '점도 없고' 내적으로 '흠도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꼭 그와 같이 될 것이다.

이것은 많은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그 문제에 대해 알아보아야 하겠다.

사람들은 천국으로 이끌어 줄 그 의는 단순히 전가된 의가 아니라 부여된 의를 수반하는 전가된 의이다. 칭의와 성화는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칭의가 공표되는 곳은 어디든지 이미 성화(근본적인 면에서)를 부여받은 것이다.

칭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과 관계가 있고 성화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우리의 상태와 관계된 것이다.♡

로마서 5장과 마찬가지로 로마서 8장도 중요하고 복된 복음의 일부분이며, 만일 실질상으로 성화가 배제된 것으로서 칭의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성도에게 있어서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다.

오직 의만이 그것의 확실한 증거가 된다. 나무가 그 열매에 의해서 구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가된 의도 생활 속에 나타나는 그 의의 효험과 더불어 내적인 의로 말미암아 인정을 받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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