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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34]

En Hakkore 2024. 7. 11. 11:27

그리스도의 율법1(마 5:17, 18)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17절).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율법에 대신 순종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소치니주의자들은 이 구절에서의 '완전하게 하려 함' 이라는 말이 단순히 '메우다' 또는 '가득 채우다' 라는 뜻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는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부분적으로는 도덕법을 취소하시며, 부분적으로는 도덕법을 첨가하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랜트(Grant)는 그의 '숫자로 나타낸 성경' 이란 책에서 그것을 '완성하다' 라고 번역했으며 그의 주석에서 그는 "신약이 없이 어떻게 구약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빈 공간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꼭 같은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상당히 많은 독자들이 이 잘못된 영향을 받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그러한 궤변을 드러내고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것의 참된 의미를 확립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하기 위해서 우리는 조지 스미턴(George Smeaton)이 주장한 것을 요약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첫째로, "여기에서 사용된 단어의 율법이 완전하게 한다는 것보다는 '채운다' 라는 번역을 우선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그 같은 해석과는 반대이다. 동사가 율법이나 율법의 정신에 포함되어 있는 특별한 요구에 사용되어질 때에는 그러한 어법을 인용할 수 없다.

즉, 그러한 경우 그것은 획일적으로 '완전하게 하다' 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와 같이 그 말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8)라고 사용되고 있다.

그 확고한 언어 사용법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다른 요소들을 추가함으로써 율법을 채우거나 보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에 복종하고 그 아래 계심으로써 그것을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그 의미를 규정하고 있다."

둘째로, '채운다' 라는 말이 그 동사의 2차원적인 의미나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예언을 채우거나 해석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들의 예언을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그 말이 어떠한 예언적인 것에서 사용될 때는 언제든지 오직 '완전하게 하다' 라는 의미로서만 사용된다는 것을 항상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의 일정한 의미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18절은 17절에 쓰여진 말씀에 대한 이유로 간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관련 구절을 "나는 율법을 채우거나 보충하러 왔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이라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고 번역한다면 여기에 어떤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고 보겠는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강력하고 결정적인 의견을 첨가해야 할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폐하다' 라는 말과 정반대가 되는 '완전하게 하다' 라는 말을 사용하셨는데, 그 말은 그 범위와 의미를 분명하게 확정시키고 있다.

율법을 '폐하다'는 것은 그것을 무의미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효로 하거나 폐기하거나 또는 취소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율법을 '채운다' 거나 완성한다는 말은 분명히 '폐하다' 나 무효로 만든다는 말과 적절한 대조를 이루지 않는다.

그러므로 '완전하게 하다' 라는 말에는 그들(율법과 선지자)이 요구하는 것을 실행하고 구체화하며, 그들이 요구하고 공표한 것을 이행한다는 뜻을 그 말의 근본적이고 당연한 의미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유대인들의 부패한 의식으로부터 율법을 건져내고 율법의 좀 더 숭고한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사도들이 해낼 수 있는 임무였다. 그러나 '영원한 의' 를 가져오는 것은 단순한 피조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율법은 오직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서만 '완전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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