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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33]

En Hakkore 2024. 7. 11. 11:26

그리스도와 율법1(마 5:17, 18)

둘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율법과 선지자'가 아니라 '율법이나 선지자' 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것이 전혀 다른 개념을 제시하기 때문에 그 구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는 율법과 선지자를 하나의 통일체로 묘사하고 있지 않으며, 또한 율법의 정신을 다른 말로써 묘사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여기서의 그 두 개의 용어는 이접사인 '이나'라는 말로 연결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들을 각각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별개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선지자들이란 율법을 주석하는 자들이 아니고 오히려 그의 인격과 사역과 나라를 예언하였던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는 윤리적인 것이든 서술적인 것이든 간에 모든 부분과 요소에서 구약성경이 자신과 관련이 있으며, 자기 안에서 그것이 성취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그의 분명한 의도였다.

셋째로, 이 설교 전반에 걸쳐 선지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과 (예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는 주의하라) 18절  이후로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다루고 계신다는 것을 주목해야만 하겠다.

앞으로 나아가기에 앞서, 우리는 다음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율법'이라는 말로써 정확하게 무엇을 나타내셨는가 하는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주저하지 아니하고 유대인들의 모든 율법은 3종으로 되어 있다고 대답할 수 있다. 즉 의식법과 재판법과 도덕법으로 되어 있다.

의식법에는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데에 있어서 준수해야 할 규칙과 법령들을 설명하였고, 재판법에서는 유대 국가를 통치하고 범죄자들을 벌하기 위한 법령을 설명해 놓은 것인데,

즉 전자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고, 후자는 주로 그들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도덕법을 세우는 데에 이바지하였기 때문에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과도 관계가 있다. 그리고 도덕법은 십계명에 포함되어 있다.

유대인의 모든 율법이 우리 주님께서 표현하신 '율법' 이란 것에 포함되어 있지만 산상설교의 뒷부분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주로 도덕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주로 그것에 대해서 언급하셨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여기에서 이 용어는 여러 가지 상징들과 희생의 법규와 특별히 속죄제를 포함하였다는 것을 부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희생의 상징들이 실제로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화해의 제물과 모든 상징적인 방법에 대해서 모세가 언급한 모든 것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문제가 당연히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 상징들로 예시되었던 그 실체를 하나님께 바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완성하지 아니하셨다면 그들은 성취되지 않은 예언과 상징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명백히 그리스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상징들로 약속하셨던 그 본체를 바치기 위해 오신 것이다.♡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17절).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완전하게 하려 한다' 라는 말로 무엇을 나타내시고자 하는가를 주의 깊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도덕법을 취소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 아니라 특히 그것의 거룩한 요구를 만족시키고 그것이 정당하게 요구하는 것을 하나님께 바치며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그것에 온전히 복종함으로써 그것을 찬미하기 위해 그가 오셨다는 것을 나타내고 계시며,

또한 선지자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임무는 그가 해야 한다고 한다는 그들이 공표하였던 바로 그 일을 이루는 것과 관련된 그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고 나타내고 계신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말씀이 그가 그의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전가될 온전한 의를 가져오려는 목적으로 이 세상에 들어오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자기를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은 이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진리를 전적으로 부인하며 이 구절을 왜곡하고 있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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