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18]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8]

En Hakkore 2024. 7. 10. 07:29

팔복 3(마 5: 3-12)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이것은 주를 대적하는 자들에 의해서 대단히 악용되었던 또 다른 복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선조 바리새인들과 같이 진리의 옹호자인 체하였으며, 우월한 존엄성을 자랑하였었다.

전 기독교 시대를 막론하여 조상들의 완전한 성결을 주장하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새롭게 하셔서 육적인 본성을 근절하셨다고 주장하는 미혹된 가련한 영혼들이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은 죄가 없다고 고백할 뿐만 아니라 죄스러운 욕망이나 생각조차도 가지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와 같은 사람들은 자기의 헛된 망상을 지지하기 위해서 성경을 내세우며, 속죄의 법적 유익을 설명하는 구절들을 자기의 체험에 맞게 적용시키거나, 혹은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것과 같은 구절을 곡해하는 것이다.

마음의 청결이 생활하는 가운데 전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모든 하나님의 성도들이 생애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노아는 술 취하였으며, 아브라함은 애매모호하게 행동한 적이 있었으며, 모세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으며, 욥은 그의 태어난 날을 저주하였으며, 엘리야는 무서워하여 이세벨로부터 도망하였으며,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다.

그렇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기독교가 설립되기 이전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때 이후로 또한 똑같은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어디에서 사도 바울의 능력보다 더 우수한 능력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을 찾아 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의 체험이란 무엇인가? 로마서 7장을 읽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선을 행하기를 원할 때 악이 그와 함께 하였다(21절). 그의 지체 속에서 한 법이 그의 마음의 법과 싸워 그를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아왔다(23절). 그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겼다(25절).

그리스도인들이여, 아직도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불순함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것이 사실은 우리가 청결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여기에서 우리는 또다시 주께서 자연인의 사상을 폭로하고 계심을 알게 된다. 자연인은 참된 축복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주께서는 바리새인들을 반박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중심에 진실함"(시 51:6)을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외적인 형식주의나 단순한 외적인 거룩함에 만족했다.

이 여섯 번째 복은 대단히 엄숙하면서도 우리를 잘 살피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 기독교계 내에서 참된 신앙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을 차별 없이 비난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만일 그들의 신조가 건전하다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는 머리로만 아는 신앙에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껏해야 손으로만 행하는 신앙을 가졌을 뿐이다.

즉, 그들은"그리스도의 봉사" 라고 하는 이름 하에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지성과 양심과 감정과 의지를 다 포함해서 하신 말씀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42

'강해시리즈 > 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수훈 20]  (0) 2024.07.10
[산상수훈 19]  (0) 2024.07.10
[산상수훈 17]  (0) 2024.07.09
[산상수훈 16]  (0) 2024.07.09
[산상수훈 15]  (0) 2024.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