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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15]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5]

En Hakkore 2024. 7. 9. 11:28

팔복 3(마 5:3~12)

이 팔복에서 주 예수께서는 '그의 참된 제자' 를 구별할 수 있는 특징과 특권, 혹은 그의 나라의 참된 종임을 나타내는 표시에 대해 설명하고 계신다.

이것은, 그의 의도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들의 특징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었음을, 혹은 누가 진실로 행복한 자인가를 또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신 것일 뿐이다.

이 팔복을 또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그것들을 참된 행복의 특성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리고 참된 행복을 얻게 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규칙들을 제시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세속적인 마음으로 얻게 되는 사상이나 이론과는 실로 대단히 다르다. 참된 행복이 외적인 것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인 은혜를 받고 그것을 더 충만하게 함으로써 얻게 된다고 주장하신다.♡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몹시 꾸짖으셨으며, 진리에 대한 세상의 개념을 얼마나 철저하게 반대하셨는가를 보여주셨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이 말씀은 행위로 말미암아 공로를 주장하는 자들에 의해 심하게 곡해되었었다. 성경이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른 어떤 구절보다도 이 구절들을 내세워서 그들의 치명적인 잘못을 변명한다.

그러나 그들의 실수를 감소시켜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이 말씀에는 그들의 치명적인 실수를 조금이라도 지지해 주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 주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죄인들의 소망의 근거에 대하여 설명하셨던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의 영적 자질을 설명하신 것이다. 긍휼은 그리스도 백성의 영적 자질 가운데 특별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설명하신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긍휼은 지금이나 장래에나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주시는 행복의 기쁨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에 있어서의 필수불가결한 특성이다.

이와 같이 특별한 일련의 복이 있는 곳에는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분명한 열쇠가 있다. 처음의 네 가지 복은 더불어 일어나는 열매인 네 가지 위로가 있다는 사실에서 보면,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은 자의 마음속에서 시작되는 번민을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앞의 말씀에서, 그리스도에 주리고 목말랐던 영혼이 우리에게 그것의 처음의 결과와 증거를 보여준 사실에서 보면, 주리고 목마른 후에 그리스도에 의해 배부르게 된다.

주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았으므로, 이제 구원받은 죄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얻기 위해 긍휼히 여기라고 요구하신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의 전체적인 계획을 전복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사람이 되었으므로, 나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될 것임이요" 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결국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주제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첫째로, 이 말씀에서의 긍휼의 특징을 정리해 보기로 하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런 긍휼은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즉 어떤 사람이 비참한 상태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하려는 것이다.

긍휼이란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말한 관점에서 보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또한 자신의 마음의 비참한 상태를 느끼게 되어, 그것을 슬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또 다른 어떤 상태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면 흥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급하고, 잔인하고, 압박하고, 해를 끼치는 모든 것과는 반대이다.

즉 인류의 비참한 상태를 애석하게 여기고, 그것을 경감시키고 없애려고 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을 걱정함으로써 개인적인 이득이나 특권을 증가시키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개인적인 안락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려는 관심이나 감사의 마음이다"(토머스 스코트).♡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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