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1]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

En Hakkore 2024. 7. 8. 11:09

원제: An exposition of the Dermon on the Mount

서론
마태복음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의 사역 이후 계속되던 오랜 침묵을 깨뜨렸다. 그 침묵은 400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외면하셨다.

이 시기에는 천사의 현현이나 여호와를 대변하는 선지자도 없었으며 또한 선택받은 백성들이 심하게 압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중재도 없었다.

4세기 동안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 외에는 다른 기록들을 주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몇 번이고 메시야를 보내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으며 말라기 이후로, 예언된 그분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 점에서 마태는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가 암시해 준 그 실마리를 찾아내었다.

마태복음의 첫 번째 목적은,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들을 성취하고 메시야와 관련된 예언들을 성취시키는 자로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마태복음에서 "성취하다"라는 말이 15차례나 나타나게 된 이유이며, 나머지 세 개의 복음을 합친 것보다도 그의 복음에서 구약성경을 더 많이 인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태복음이 성경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그 복음서의 특성과 범위를 암시해 준다. 그것은 구약에 뒤이어 곧바로 신약의 첫 부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 둘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연계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책은 과도기적 성격이 있으며 또한 신약성경의 다른 책보다 더욱 유대적이다. 마태는 하나님을, 구약에서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 다스리시는 자로 설명한다.

성경 가운데 마태복음의 서열이 이것을 확증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제 40번째 책으로서 마태복음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사 그들을 시험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는 우리 주 예수를 이스라엘의 메시야요 왕이실 뿐 아니라 그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 가운데서 구해주실 분으로서 소개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의 계보라" 라는 그 첫 문장은 마태복음의 내용을 푸는 열쇠이다. 이 복음서에서는 그리스도를 7차례 이상 "다윗의 자손" 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모두 합해 이 칭호가 10번 나타난다.

"다윗의 자손" 이라는 칭호는 그리스도의 보좌를 연결시켜 주며, '아브라함의 자손' 이라는 칭호는 그리스도와 그 제단을 연결시켜 준다.

이 복음서에서는 신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기독교 사회가 왜 유대 민족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가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즉 그들이 메시야를 거절하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뚜렷한 예표를 제 2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다른 복음서 기자들이 간과했던 분명한 사건, 즉 아기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하여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방문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 부수적인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이 복음서와 신약 전체에 걸쳐 기록되어진 내용의 예언자적 예견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예루살렘의 외부에서 그리스도가 소개되어지고 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메시야의 나타나심에 대하여 얼마나 눈멀고 무관심하였는가를 보여준 사건이다.

즉 그분이 바로 그들 가운데 계신 것을 알지 못하였고, 동방 박사들이 따라온 것도 탐탁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다음으로, 구세주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먼 나라에서 그를 찾아내어 그에게 경배하러 온 이방인들이 있었다.

끝으로, 우리는 증오로 가득 차서 그리스도를 죽이기로 결심하는 통치자들을 보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에 대한 하나의 전조가 된다.

제 4장의 중간에 이르러서야 마태는 "이 때부터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17절)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문맥상으로 보아 여기에는 시기의 표시가 지극히 분명하게 나타나 있으며 2장에서 예시하였던 바와 같은 진리의 엄숙한 국면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 주님의 선구자가 "잡힘"(12절)을 알 수 있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오랫동안 사셨던, 2:23) "나사렛 사람들이 공공연히 그를 거절하였기 때문에(눅 4:28~30을 보라)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다"(13절).

셋째로, 여기에서는 구세주께서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된"(16절) "요단강 저편 이방의 갈릴리"로 가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유대인들이 그를 거절하였으므로 그가 이방인들에게로 향하셨다는 것을 예증해 주는 또 하나의 예견이다.

제 4장은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은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인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24, 25절) 라고 끝을 맺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주님께서 사람들의 영혼에 자양분이 되는 그의 위대한 산상설교를 말씀하시기 전에 왜 그들의 육체를 고쳐주시는 그 기적들을 행하셨는가에 대해서 의아해하고 있다.

첫째로, 이 병 고치는 기적들은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4:23) 일에 뒤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둘째로, 이 병 고치는 기적들은 그가 메시야라는 증거의 본질적인 부분이었다(사 35:4~6).

셋째로, 이 병 고치는 기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를 나타내신 이의 말씀을 경청하게 함으로써 더 완전하게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한 방법이었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1

'강해시리즈 > 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수훈 6]  (0) 2024.07.09
[산상수훈 5]  (0) 2024.07.09
[산상수훈 4]  (0) 2024.07.09
[산상수훈 3]  (0) 2024.07.09
[산상수훈 2]  (0) 2024.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