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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328]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28]

En Hakkore 2024. 7. 2. 10:44

의로운 재판관(출애굽기 32:15-27)

지금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현재의 부분은 앞서 보았던 구절들과는 전혀 다른 장면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앞에서는 상징적 중보자가 그분이니 목이 곧은 백성으로부터 진노를 거두어 주실 것을 여호와 앞에서 너무도 은혜롭고 효과적으로 간청하는 것을 보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세가 하나님과 매우 기이하고 복된 교제를 가졌던 산으로부터 내려오다가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는 죄를 보고 분노하여, 돌판을 깨뜨리고, 금송아지를 가루로 만들어, 물에 흘려보내고 또 백성들에게 마시게 한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그 기도의 사람이 책임이 있지만 범죄한 지도자인 아론을 비난하고, 또 레위 사람들을 불러 각기 그들의 칼을 차고 "각 사람이 그 형제를 죽이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본다. 이러한 대조는 너무도 과격하고 이상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였고 그래서 이 일에 대하여 시도된 설명들은 기괴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형이 지금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인가' 라고 즉시 질문하는 것이 적절한가? 또는 이 구절에 나타난 모세는 더 이상 그리스도를 예표하지 않는가? 우리들 앞에 있었던 출애굽기의 이전의 장들 이후에는 확실히 이 질문에 대하여 긍적적으로 답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묘사의 영적 의미와 적용을 깨달을 수 없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결점이 있다고 말하거나 심지어 상상하는 것에 대해 확실히 어떤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기보다 우리의 시력이 희미하다고 고백하고 스스로 위대한 의원 되신 이에게 나아가 그로 우리의 눈에 안약을 발라 볼 수 있게 하는 것(계 3:18)이 훨씬 나은 것이다.

다만 그의 빛 안에서만 우리는 "빛을 본다"(시 36:9). 만일 하나님의 권위 있는 신탁의 말씀에 대하여 쓰려고 펜을 잡은 우리들이 이 일을 좀 더 충실히 그리고 자주 행했다면,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일"(욥 38:2)이 훨씬 적었을 것이다.

거의 모든 부분이 매우 영적이며 유익해서, 하나님 아래서 필자 자신이 적잖은 도움을 받았던 C. H. M.의 출애굽기 노트(Netes on Exodus)에 의하면, 우리들이 지금 다루고 있는 서두의 구절에 대해 이르기를,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보는 것과는 얼마나 다른가!

주님은 성부의 품속에서 내려오셨는데, 손에 돌판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분의 심령에 율법을 가지고 오셨다. 주님은 그 백성들의 조건에 친숙해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내려오셨다.

더욱이, 언약의 기념물을 깨뜨리고 심판을 시행하는 대신, 주님은 율법을 칭찬하면서 그것을 고결하게 만들었으며,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자신의 복된 인격으로 그의 백성들에 대한 심판을 대신 지셨다"( p 316 참조). 여기에 우리 모두가 거룩한 훈계에 주의할 필요를 보여주는 적절한 실례가 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 5:21) - 다른 이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저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 라고 하신 말씀을 가르쳐 주는데, 오직 이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천한 것에서 구한 것을 취할 수 없다"(렘 15:19).

첫째, 우리가 여기에서 보는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초림의 모형에 대한 비교나 대조도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곧 이어지는 구절에서 모세가 산에서 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되는 일인가?

둘째.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는 손에 십계명을 가지고 오셨고,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강조하기 위하여 오셨지만, 물론 그들의 용서할 수 없는 죄에 대하여 형벌을 내리고자 함은 아니었다, 그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정확히 '은혜' 를 위할 뿐만 아니라 '진리' 도 위함이었으니(요 1:14), 이르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고 하셨다.

사복음서에서 그리스도의 손에 돌판이 들려 있음을 거듭하여 본다(마태복음 5:27-32; 15:3-6; 19:16-19; 23:2-3 참조).♥

셋째, 모세는 "백성들의 어떠함을 알아보려고" 산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출애굽기 32:7-9에서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그가 내려오기 전에 이미 그들의 가공할 상태와 죄에 대해 이미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이 지금 보고자 하는 출애굽기 32장의 하반부의 내용은 우리가 충분히 확신하는 깊고 오묘한 상징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름 아닌 거룩한 인도만이 이 부분의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이 모형이 이중적으로 적용된다고 믿는데 첫째는 이스라엘에게요 둘째는 기독교에게다. 이스라엘에 대한 그 적용은 이미 출애굽기 24장의 종반부에서 이미 설명했지만, 살펴보지 못한 자들도 있을 것임므로, 여기서 다시 간결하게 그때 말한 것을 반복하고자 한다.

첫째, 출애굽기 24:18에서, 모세가 제단을 세우고 피를 뿌린 뒤에(출 24:4-8), 그 결과로서 영광 가운데(구름)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만일 출애굽기 24:16, 18을 본다면 '여섯째 날' 은 다음에 있었던 일임을 알 수 있다.

- 여섯째 날은 일과 수고를 말하며, 일곱째 날은 모형적 중재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광 가운데로 들어가는 안식을 말한다. 이것은 히브리서 4:10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아름다운 예시가 되었다.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렇다면 그가 들어가신 '안식' 은 무엇이었나? 이와 같이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 여호와와 교제하기 위하여 구름 속으로 들어간 것은 그리스도의 승천(ascension)의 모형으로서, 그에게 분부하신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신 뒤에 일어난 일이다.

산에서 여호와와 모세 사이에 교제할 때에 주제는 성막과 제사장의 직분에 관한 계시였는데, 이 사실이 책의 이 부분에 있는 것은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의 예비하심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그분이 이 땅에 계시지 않는 동안 그리스도에 의하여 또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지키심을 말한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28

◆ 예레미야 15장 19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 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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