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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30]

En Hakkore 2024. 7. 3. 11:14

의로운 재판관 3(출애굽기 32:15-27)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출 32:19).

참으로 엄청난 광경이 이들 하나님의 종들 앞에 전개되었다. 최근에 여호와의 분명한 위엄 앞에서 허리를 굽혔던 바로 그 백성이 이제는 금으로 만든 송아지의 형상 주위를 음란하게 뛰놀고 있었다.

모세는 거룩한 분노로 돌판들을 땅에다 던졌는데, 이는 주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에 그분의 아버지의 집을 욕되게 하는 자들을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쪼아낸 것과 같고, 또한 요한계시록 1:14에 그분이 "불꽃 같은 눈" 을 가진 것으로 보였음과 같다.

"모세가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이 말씀은 야고보서 2:10에 말씀하신 사실에 대하여 매우 놀라운 실례를 제공해 준다. 거기 이르시기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그 하나"를 범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인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4, 5)고 하셨다.

이것을 그들이 불순종하였고, 또 율법은 연합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그 모두를 범한 것이다 - 이와 같이 두 돌판이 깨어진 것은 십계명이 전체적으로 범해졌음을 보여준다.♥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출 32:20).

소위 어떤 '고등 비평가' 들은 그들의 상습적 회의주의와 일치되게 모세가 그 가루를 '물' 에다 뿌린 구절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했지만, 만일 이들이 "성경을 살피는 데" 애를 썼다면, 성령께서 이 점에 대하여, 비록 이 장에서가 아닌 각기 다른 책에 있기는 하지만, 빛을 허락하신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이는 성경은 게으른 자에게는 그 의미를 허용하지 않으시기 때문).

신명기 9:21에, 이르시기를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고 한다. 그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 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출애굽기 17:6에서 말씀해준다.

여기에서 우상을 가루로 갈아, 물에다 그것을 뿌려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한 모세의 행동은 매우 진지하다. 그리스도인들이란 우상으로부터 멀리하도록 명하심을 받은 자들인데(요일 5:21), 우상은 새긴 형상에 절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실을 내포한다는 것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상' 이란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 자체는 아무런 해가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주의를 사로잡는다든지, 나의 감정과 생각 속에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우상' 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직업, 사랑하는 자, 또는 그리스도를 위한 나의 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 또는 그 무엇이든지 실제적인 면에서 우리 주님께서 나를 주장하시는 일과 경쟁이 되는 것은 하나의 '우상' 이다.

만일 내가 한 우상을 세웠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미쁘심과 사랑으로 그것을 무너뜨릴 것이다. 즉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된다"(갈 6:8).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출 32:21).

이제 모세는 마치 요한계시록 2, 3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지역 교회의 책임있는 '천사' 또는 '사자'들에게, 그 처지에 따라 말씀한 것 같이, 남아서 백성을 담당했던 자를 책망한다. 여호와의 존귀와 영광을 유지했어야만 할 자의 대답을 들어보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출 32:22, 23)고 하였다

이는 참으로 매우 슬픈 일이다. 그들이 범한 죄의 무서움에 대한 감각이나 회개의 징표는 조금도 없고, 그 대신에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있었다. 태초에서부터 이와 같았는데, 여호와께서 아담을 꾸짖자 그는 그의 아내에게 책임을 돌렸고(창 3:12), 하와에게 묻자 그녀는 뱀을 비난했다.

우리는 기독교계의 지도자들이 "백성들이 요구하기에 그렇게 양보해야만 합니다" 라고 하는 말을, 얼마나 자주 듣는가!

"아론과 모세 사이에 어떤 상이점이 있는가! 아론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우상에 대해 바라는 소원을 거절하는 대신, 실제로 송아지를 만들었고, 그 후에 백성들이 악을 저지르게 했다는 변명의 성질을 가진 자로 그 하나의 본보기의 방법으로 자신을 변명했다(출 32:24).

모세는 60만 명을 맞상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내려왔기에, 그들의 죄에 대해 심판하며,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일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과 함께 하는 종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종 사이의 대조 바로 그것이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행동한다면 그는 언제나 능력으로 행동한다. 설혹 그가 은밀하게는 연약함으로 인하여 행해지는 일이 많다고 하더라도, 공적인 입장에서는 능력으로 행동하지 불확실함과 망설임으로 하지 아니한다"(C. A. C.).♥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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