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Exodus 329]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29]

En Hakkore 2024. 7. 3. 11:13

의로운 재판관 2(출애굽기 32:15-27)

연대기적으로 보면, 그 다음 사실은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된 모세의 하산(descent)이다. 그는 그의 날을 산에서 끝맺지 않았으나, 적절한 때에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왔다. 이와 같이 모세가 예표했던 그분도 위에서 영원히 계시지 않고, 그가 가셨을 때와 정확히 똑같이 실제로, 돌아오실 것이다.

모세가 두 번씩이나 시내 산 영광 가운데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 사실을 보면 매우 인상적이다.

첫째, 출애굽기 32:15에 기록함과 같고, 둘째, 출애굽기 34:29에 보면 그 진행 도중에 물론 돌아왔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재림하실 때에도 두 가지 상태가 있을 것이니, 그 첫째는 그가 공중에 강림하셔서 그의 성도들을 취하여 올라가심 것이니, 그 첫째는 그가 공중에 강림하셔서 그의 성도들을 위하여 올라가실 것이요(살전 4:16, 17), 그 두 번째는 이 땅 위에 직접 내려오실 것이다(슥 14:4)♥

구속자가 돌아오시는 이 두 가지 경지는 이스라엘에게 매우 다른 영향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 첫 번째에는 무서운 심판이 뒤따를 것이요. 두 번째는 비교할 수 없는 지복의 시기, 실제로 천년 왕국의 시기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구절은 모세가 첫 번째 내려온 뒤에 곧이어 일어난 일이다. 그가 산에 올라가고 없는 사이에, 백성들이 스스로 아론에게 모여 이르기를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디 알지 못함이이니라"(출 32:1)고 하였다.

이것은 이러한 모든 은혜 시대를 통해 유대인들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자신들의 메시야가 오랫동안 없는 혼돈의 상태에 있기에, 무엇을 생각할지 알지 못한다. 모세가 없는 동안에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에 절하였다.

그런데 역사는 바로 이 사실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는가? 유대인을 특정지었던 것은 정복의 애착이나 쾌락의 유혹이 아니라, 이방인이 그러했던 것같이 황금에 대한 탐욕이다.

모세가 산에서 처음 내려왔을 때 바로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을 본 것처럼, 우리 구세주의 재림때의 첫 번째 국면에서는, 또한 이스라엘이 여전히 물질적 부를 맹렬하게 추구할 것이다.

이에 또한 모세의 반응은 심판을 행하는 것으로서 그들의 우상의 가루를 마시게 하고 칼을 명하여 그들을 치도록 요구한 것처럼,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진노의 쏟은 잔을 마시게 될 것이며 칼 아래에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민족이 모세의 분노 아래에서 완전히 종식되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도 대환난의 아주 쓰라린 기간 아래에서 그러할 것이다.

출애굽기 33-34장의 모세가 두 번째 산에서 내려온 뒤의 일은 천년 왕국의 조건을 예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모형을 이스라엘에 적용시켜 설명했으니, 이제 그것이 기독교 세계에 적용되는 것을 고려해 보자. 우리들 앞에 있는 구절에서 모세의 행위는 지난 장에 있었던 것과는 다른 성격의 그리스도를 예시했다.

거기에서 그를 그 백성을 위하여 간구하는 중보자로 보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그를 소모적인 것이 아닌, 교정적(corrective) 심판을 조사하고 집행하는 심판자로 보게 된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진영에서 일어났던 일을 노출시키고 심판하는 것은 요한계시록 2, 3장의 주님의 자세와 매우 흡사하다. 주님은 일곱 촛대 사이를 그의 자리로 정하사 어떤 것이 약하며 우상적인지를 심판하시고,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서 발견된 것과 같은 그러한 충성의 동기를 답변으로 취하는 것이다"(C. A. Coates).

우리는, 지금 다루고 있는 모형의 의미의 열쇠를 공급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처음에 나오는 세 개의 장이라고 믿는다.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출 32:15, 16).

이것은 앞서 있었던 내용의 반대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앞의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 것이며, 지금은 그의 통치(government)를 나타내는 것이다. 모세의 손에 있는 들판들은 도외시해서는 안되는 율법의 공의로운 요구를 선포하였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한 것은 세상에 속한 자들에게 말한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12-18에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영감적인 묘사를 주의 깊게 보기를 바란다.

거기에서,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비 요 5:27)가..."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16절)고 한 것을 보게 된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출 32:17-18).

여기에서 한 중대한 영적 원리가 예시되고 있다. 출애굽기 24:13-18으로 되돌아가보면, 모세와 여호수아가 산에 함께 올라가기는 했지만, 백성은 밑에다 두고 모세 혼자만 구름 가운데 들어가 여호와와 이야기 했음을 본다. 모세가 여호와와 '교제' 한 40일 동안, 여호수아는 혼자 있었음이 분명하다(출 31:18).

이 일의 결과를 우리는 앞에 있었던 구절에서 볼 수 있는데, 진중에서 일어난 일의 올바른 상태를 파악한 자는 여호수아가 아니라 모세였다. 모세는 그의 귀로 진으로부터 들려온 시끄러운 소리와 소음을 바로 해석할 수 있었다.

오직 하나님의 빛에 의해서만이 우리가 빛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님과 더불어서 오랜 사귐만이 우리에게 듣는(hearing) '귀 를 얻게 한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30

'강해시리즈 > 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odus 331]  (0) 2024.07.03
[Exodus 330]  (0) 2024.07.03
[Exodus 328]  (0) 2024.07.02
[Exodus 327]  (0) 2024.07.02
[Exodus 326]  (0) 2024.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