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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19]

En Hakkore 2024. 7. 2. 10:40

안식일과 이스라엘 4(출애굽기 31:12-18)

출애굽기 31장에서 언급되어진 안식일에 대한 모형적 중요성을 고찰하고, 그것에 대한 경륜적 적용에 대하여 지적하려고 했으니,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 구절에 대한 사법적인 견해를 고려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14, 15절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생명이 끊어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고 한다.

이 경고에 대한 엄숙한 실례는 민수기 15:32-36에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셔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에 대해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것 같다. 이에 대한 열쇠는 모세 통치의 성격과 그 목적을 살펴보면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그 세대는 율법적이며 시험적인 시기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들었던 완전하고 최종적인 계시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순수한 율법으로 이루어진 엄격한 제도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십계명의 선포에 의하여 시작부터 돋보였지만, 곧이어 성막과 제사장직의 제도에 대한 계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대리자들을 통하여 그에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가 된 일련의 제물과 희생들에 대한 거룩한 지시(레위기 참조)가 그 뒤에 즉각적으로 이어졌다고 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의하여 그리고 이를 통하여 유용하게 되고 확보되는 전형적 예표가 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또한 그 당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가장 은혜로운 예비가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면에, 모세의 통치기간 동안에는, 그 경우의 특성상, 하나님의 은혜의 온전하며 완전한 계시는 없었으며 또 있을 수도 없었다. 율법은 어디까지나 율법이고, 그리고 공의는 그것의 규정과 형벌에 대해 엄격한 집행을 요구한다.

자비는 "부지중에 지은 죄"(레 4:2-4; 민 15:27, 28)와 어쩔 수 없이 더 더럽혀진 접촉(민 19:11-19)에 대해서는 대책이 있을 수 있거나, 있었고 그리고 준비된다. 하지만, 고의적으로나 자발적인 범과에 대해서는 희생제물이 소용이 없었다.

"모세의 법을 폐한(despised, 몹시 싫어한) 자도 두 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히 10:28). 이러한 특징을 예시하는 데 딱 들어맞는 유명한 경우는 어떤 사람이 살해되었을 때에 모세의 율법을 요구하는 것과 연관되어 발견된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도피성인데, 민수기 35:9-24을 주의하여 읽어 주시기를 바란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부지중에' - '사전에 계획된 악의' 없이 - 죽임을 당했으면(민 35:11, 15), 그를 죽인 자는 이 성읍들 중 한 곳에 은신처를 삼을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살해당하였다면, 말씀은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16, 17절)라고 하셨다. 방금 말한 이 사실은 시편 51편에서 설명하고 있으며 또한 그 내용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그 의미를 이행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 시편은 다윗의 깊은 참회의 기록이다. 그는 우리아를 죽인 살인죄를 범했다. 다윗은 16절에 이르기를,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라고 하였다.

살인죄에는 '희생제사' 가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가련한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 위에 자신을 던지며(1절), 그의 죄과를 스스로 인정하며(3절), '피 흘린 죄' 에서 구해 주시기를 부르짖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의 부르짖음은 상달되었고, 그리고 특히 이것이 들으심을 받은 것으로 "긍휼은 심판을 이긴다"(약 2:13)는 축복된 진리가 증거되었다. 방금 지적한 이 사실은 모세 시대에 편만했던 엄중한 개념을 크게 수정해 주는 것이다.

사실상, 엄밀한 의미에서, 율법은 자비를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율법과 나란히 레위기의 희생제물이 있었고,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넘어 그리고 그것들 위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었기에, 상한 심령으로 이를 구하는 자들에게 효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사실을 함께 명심하지 아니하고 각기 차이가 나는 것들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이것들에 대한 사상과 개념에 혼돈을 불가피하게 초래하게 될 것이다.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율법의 강한 요구였고, 그 형벌의 정당한 집행이었다. 이것은 제4계명에 대해 전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홉 가지에도 동일하게 통용되었다. 다음 구절은 그 실례와 증거가 될 것이다.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5),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0:10).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레 24:16). 또한 신명기 13:6-10등을 보라.

우리들이 다루고 있는 31장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증거판을 주시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끝을 맺는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18절). 이로써 24:18에서 시작된 출애굽기의 한 단원은 끝을 맺는다.

모세는 산에서 40일 동안 여호와로부터 지시하심을 받았다. 이러한 지시들이 그러한 두 돌판들을 주심으로 끝났다고 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 성막을 위하여 일할 세공들의 비명과 안식일에 관한 언급 이후의 내용에서는, 모형적으로, 하나님의 권리와 요구사항이 주 예수의 인격과 사역에 의하여,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선하게 이루어졌으며 영원히 보장된 사실을 공포한다.

은혜가 이제 '지배' 하지만, "의를 통하여 왕 노릇" 하는 것이다(롬 5:21). 출애굽기 31:18과 앞으로 다루게 될 내용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는 다음 장에서 보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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