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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314]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14]

En Hakkore 2024. 7. 2. 10:37

지명된 세공들 3(출애굽기 31:1-11)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여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모든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출 31:6).

많은 인간의 성품들은 신 -인의 다각적이며 다양한 완전함을 예표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었다. 피조물은 창조자를 나타낸다. 창조물 중 어떤 것들은 그분의 전능한 능력을 나타내며, 또 어떤 것들은 그의 완성된 지혜를, 다른 것들은 그의 항상 있는 미쁘심을, 또 다른 것들은 그의 풍성한 긍휼을 나타낸다.

그것들은 각기 그리고 모두 그들을 만드신 자의 특별한 속성들을 나타내기 위하여 요구된다. 이와 같이 아벨, 노아, 모세, 아론, 다윗은 그리스도의 전체의 모형이 되며, 그들 각자의 그분의 인격, 직임 또는 사역의 어떤 특징적인 측면을 가리킨다. 우리 앞에 있는 모형도 이와 같다. 즉 오홀리압은 브살렐을 보충하고 있다.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이들의 이름의 뜻 또한 중요하다. 오홀리압은 '아버지의 장막' 이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1:14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헬라어로 장막을 침),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이름의 효력은 분명하다.

마치 여호와께서 구약시대에 광야에서 그의 거처를 재차 발견하였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고후 5:19)라고 하심과 같다.

주 예수께서 인간 가운데서 행하신 것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딤전 3:16)이었다. 그 현현이 너무도 완전하고 완성적이므로 그가 이르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 14:9)고 하셨다.

오홀리압은 아히사막의 아들이었는데, 후자의 이름의 뜻은 '의지할 형' 이다. 어떤 이가 말한 것처럼, "아마도 이 이름은 오홀리압이 성막을 짓는 일에 있어서 브살렐의 동료 - 조력자였다는 사실에 대해 주로 언급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오홀리압이라는 이름에서 아버지라는 뜻이 있고, 아히사막이라는 이름에서는 '형제' 라는 말이 있음은 그리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히브리서 2:9-11에서 포함하고 있는 진리, 곧 예수께서 고난과 죽음에서 높임의 자리로 부활하시어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신 것뿐만 아니라 또 '거룩하게 하는 자(주 예수)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자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라고 하신 이 말씀이 예언적으로 암시하고 그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거소가 되시며, 그리고 그의 형제들에게 의지할 형제가 되신다"(H. W. Soltau).

오홀리압은 단 지파에 속한 자였다. 유다가 이스라엘이 진행할 때 인솔했는가 하면 단은 후미를 이끌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예시된 영적 원리는 세공들의 우두머리로 지명된 이 두 사람이 모든 이스라엘을 대표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 예수께서도 그가 완성하신 영광스러운 사역을 통하여 가장 연약한 자와 마찬가지로 가장 강한 그의 모든 백성의 표본이 되었다. 단이라는 이름은 '심판' 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성막이 경배와 찬양의 장소가 됨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의 희생을 통하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심판의 행위를 드러내셨기 때문이다"(H. W. S.).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출 31:6).

이 말씀은 11절에서도 반복된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묘사하는 의미있는 구절이다. 그들의 일의 상세한 내용은 미리 신성하게 지정되었다. 자의로 실행할만한 여지는 없었으며,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달성되어야만 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그 원형에서 성취되었음을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 된다. 다음에 이르신 그의 말씀들은 참으로 명백하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 39).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을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 10:17, 18).

7-11절에 언급된 상세한 세목들은 앞 장에서 거론한 것들이므로 별도로 나누어서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특별히 구분된 열네 가지 일에 대해서는 살펴보아야 하겠다.

1)회막(모이는 장막), 2)증거궤, 3)그 위의 속죄소, 4)회막의 모든 기구(기둥, 받침, 목 등), 5)상과 그 기구... 등이 있다. 4, 5절에서는 다섯 가지의 일들이 언급되어 있고, 7-11절에서는 열내 가지의 물건들을 만드는 것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거룩한 은혜 위에 근거하고 있었음과 그 분은 그것을 시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완전함에 대한 완전한 증거를 보여주었음을 말하고 있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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