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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304]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04]

En Hakkore 2024. 7. 1. 17:17

물두멍 4(출애굽기 30:17-21)

4. 구성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출 30:18).

바깥뜰에 있는 모든 것들은 놋(실제로 동)으로 만들어졌거나 아니면 놋으로 입힌 것들이었는데, 번제단, 물두멍, 기둥, 못 등이 모두 그러했다.

이것은 모두가 금으로 되었거나 금으로 입혀진, 내실에 있었던 기구들과는 현격한 대조를 이루었다. "인간의 책임에 대해 시험하는 것 따라서 인간이 있는 그 장소에서 인간을 시험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이러한 이유로, 놋은 언제나 성막의 바깥에서 발견되지만, 하나님의 본성에 어울리는 거룩한 공의를 의미하는 금은 내실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시험하면서 부득이 그를 정죄하는 것이니, 이는 그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단히 사법적 측면과 관련된 것으로 있을 것이다"(Dennett).

만일 15장의 내용을 돌아본다면, 거기에서 이 상징의 의미에 대하여 어느 정도 개입하였던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정의를 다시 입증하지 않고, 우리는 여기에서 '놋'은 심판에 대해 말한다는 단순한 주장만을 말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물두멍은 그리스도의 특성 중 심판을 상징하고 있다. 요한복음 5:22에서 그가 이르시기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한다.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인자' 같은 이가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있는 것이 보이는데, 판단하는(감찰하고 엄히 명하시는데) 그의 발이 "빛난 주석"(15절)고 한다.

그러므로 물두멍의 놋은 그의 백성을 시험하고 판단하시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훼손하는 것을 정조하시는, 변개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공의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들이 정죄된 바로 그것들을 제거하는 물을 또한 제공해 주심을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것은 우리의 대속물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는 것도 또한 우리에게 심판을 내리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날에 모든 세상을 그가 심판하시기 전에, 그의 백성을 심판하도록 주신 권세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들의 길을 시험하고 단련하시는 것이다"(Ridout).

5. 용도

엄격히 말해서, 사용된 것은 물두멍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물이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thereat) 수족을 씻되" 라고 하셨는데, 더 문자적으로 말하면 '그것으로부터'(from it, 그것과 떨어져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아론의 자손들이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곧 제사장으로서의 특징을 가진 신자들이 그들의 모든 길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일을 말한다(골 3:16).

놋으로 된 물두멍 속의 물은 신자가 그 말씀에 의하여 가차 없이 자신을 판단하는 것을 지적한다.

첫째, 그 말씀은 우리가 악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데 쓰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발에 등으로 그리고 길에 빛으로" 주신 것이다.

그것은 사탄의 올무을 폭로하며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드러내어 준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라고 하신 말씀을 더욱더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둘째, 그 말씀은 모든 더러움을 씻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부지런히 유의하여 날마다 거룩한 말씀의 교훈에 순종함으로, 고린도후서 7:1에 이르신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라고 하신 권면에 주의할 것뿐이다.

요한계시록 22:14에서 "두루마기(외부로 나타나는 행위의 표상)을 빠는(말씀에 의하여)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권세를 받고자 함이라"고 하신 것은 얼마나 엄중한 말씀인가!

셋째, 그 말씀은 우리 영혼의 회복(refreshment)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에 대해 주의를 요구하였던 주석가가 없었다 할지라도, 이 모형이 분명히 그렇게 가리키고 있다고 믿는다.

출애굽기 30:20절에 보면 또한 아론의 아들들이 단지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 에도 물로 씻도록 명하셨다. 이것은 놋 제단에서 드리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나타난 개념은 유효함과 새로움을 위하여 그 제단에 나오는 것과 같이, 더러움에 대한 제거가 아니라, 제사장들이 그리스도의 지고한 사역의 측면을 말하였던 그러한 것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 같다.

물은 씻는 일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원기를 회복하는 데도 쓰이는데 지친 발을 그것을 씻어 주는 것보다 더 힘을 새롭게 해주는 것은 없다. 이러한 개념은 성경에서 발을 씻는 일에 대하여 맨 먼저 언급한 사실에서 발기 보는 것이 아닌가?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창 18:4). 두 천사가 롯의 집에서 그들의 발을 씻기를 어떻게 거절하였는지를 살펴보라(창 19:2) - 소돔에서는 그들을 위한 보복이 없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진 이 모형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적용은 명백하다. 제사장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섬기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의 말씀으로부터 소생함을 얻어야 한다. 그것으로만이 우리가 "일깨워 지며" 소생하고 회복된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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