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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290]

En Hakkore 2024. 6. 30. 14:54

금향단(출애굽기 30:1-10)

성막과 결부하여 생각할 수 있는 두 개의 단이 있었다. 그 둘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각기 다른 금속으로 입혔는데, 그 하나는 놋으로 입혀 그 이름을 '놋제단'(출 38:30)이라고 하였고, 다른 하나는 금으로 입혀 '금 제단'(출 39:38)라고 불렀다.

그 하나는 건물 바깥의 뜰 안에, 즉 출입문 바로 앞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성소의 내부, 즉 휘장 앞에 서 있었다. 이 단들은 긴밀한 관계가 있었으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 독특한 이름들은 그 특유한 목적을 가리키고 있다. 즉 전자는 '번제단'(출 40:6)이라고 명명되었는데, 희생제물을 드리는 장소였다. 후자는 '분향단'(출 30:27)이라고 불렀는데, 예배의 장소가 되었다.

두 단 모두는 분명히 우리의 하나뿐인 유일한 제단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이르기를,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히 13:10)라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왜 향단이 출애굽기 25, 26장에 언급되지 않았는지 궁금해한다. 출애굽기 25, 26장은 성막의 다른 기구들 중에 다섯 가지에 주목하고, 그리고 성막 안에 있는 성소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에 대하여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이 앞에 있는 장들에서 금제단이 생략된 것은, 여러 가지 거룩한 기구들이 제시하고 있는 모형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출애굽기 25, 26장에서 열거한 것들은 하나님게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백성에게로 나아오심과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보여준다.

그 반면에 출애굽기 30장에 있는 이 두 가지는 하나님게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신 그분의 예비하심과 그의 사랑의 풍부함을 표현하고 있다. 어떤 이에 의하여 심오하게 고찰된 다음의 내용은 매우 아름답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성소' 에 있는 기구들에 대해 지시하실 때, 왜 금향단에 대해서는 생략하시고 성막의 문 안쪽에 서 있었던 놋 제단으로 넘어갔을까?

내가 믿는 그 이유는 단순이 이것이다. 즉 하나님은 먼저 자신을 인간에게 나타내실 방식에 대하여 언급하셨고, 그 다음에 인간이 그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묘사하셨다.

그는 '온 땅의 여호와'(수 3:13)로서 그의 자리를 보좌에 펴셨다. 그의 영광의 광채는 그리스도의 육신이라는 휘장(베일)- 모형(히 10:20) 뒤에 감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과 관련하여 자신을 나타내신 일이 있었는데, 이는 순전한 상에서 뿐만 아니라, 등대에서처럼 성령의 빛과 능력에 의하여 그렇게 하였다.

그 다음에, 우리는 이 땅에 인간으로서 내려오신 그리스도의 명백한 성격은 성막의 막들과 덮개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만나는 장소가 인상적으로 나타난 곳으로 놋 단이 있다.

이것은 옛날에 그러했듯이, 최후의 지점까지, 우리가 되돌아온 곳으로부터,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동반하여, 성소로 되돌아가, 일상적인 제사장들의 위치, 곧 금향단이 서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이글어 준다. 이와 같이 그 순서는 놀랄 정도로 아름답다"(C. H. M.).

금향단과 물두멍에 대한 설명이 출애굽기 30장까지 연기되어야만 했던 두 번째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분명히 출애굽기 28장과 29장과 분명히 관계가 있는데, 여기에서 제사장직의 임명,의복과 위임식에 대하여 거론한다.

이와 같이, 금향단은 그곳 위에다 향을 태울 제사장이 생기기까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제사장들이 씻었던 곳은 물두멍이었고, 그들이 섬긴 곳은 금향단이었다. 그곳은 또한 아론이 자신을 하나님께 나타낸 곳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28, 29장의 내용은 더욱 직접적으로 연관된 두 가지 거룩한 기구들을 알기 전에 제사장의 가족들에 대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와 같이, 또한, 실제적으로 30장이 설명하는 내용을 우리가 평가하기 이전에, 앞 장들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의 취지를 파악하게 된다.

셋째 이유는, 거룩한 기구들에 대한 교훈은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데 있다. 그 각각에 대한 일차적 적용은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것이기는 하나, 그의 백성들에 대하여 이차적으로 적용할 것이 있다.

우리가 여전히 살펴보듯이, 금향단에 의하여 예표된 근본적인 적용 중의 한 가지는 예배이며,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제사장의 특권에 대한 최고의 의식이듯이, 이것은 아론의 아들들이 여호와께 나아가는 데 마지막으로 만나는 기구로서 적절하였다.

"마치 금향단이 출입문으로부터 속죄소를 보이지 않게 가린 휘장까지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 마지막 대상이었던 것처럼, 예배는 이 땅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며 다른 모든 일들은 이를 위한 준비인 그 대상이다.

아버지께서는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며(요 4:23). 이것이 주님께서 사마리아로 내려가 죄인을 만나도록 인도함을 받은 이유이며, 그녀의 마음을 죄로부터 돌리게 하여 은총의 충분한 분배로 그것을 채워서, 그녀로 거룩한 사랑의 요구에 부응하게 하며, 오직 죄인(깨끗함을 받은 죄인)만이 드릴 수 있는 찬양과 경배를 하도록 하신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주께서 빛과 평화의 하늘로부터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에 내려오기까지 긴 여행을 하도록 인도함을 받은 것이다. 그는 죄인들을 찾았고, 지금도 찾고 있다.

즉, 그들이 어떤 천사도 능히 맛볼 수없는 사랑을 맛보게 하여,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께 빚진 의식으로 넘치게 하고, 그의 탁월함에 사례하며, 찬양의 향내를 풍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찾는다"(C. H. Bright).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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