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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287]

En Hakkore 2024. 6. 30. 14:53

계속 드리는 번제(출애굽기 29:36-46)

"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마리니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출 29:38, 39).

우리는 42절에서 이 제물이 "대대로[계속하여] 드릴 번제"라고 불리어졌음을 깨닫는다. 그 제물이 번제단 위에 올려져 있음은 그것이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하게된 특성과 완전히 일치되었다.

'번제물' 은 성경에 있는 희생 중에서 최고의 모형이다. 성경에서 그것에 관한 첫 번째 언급은 우리가 그 독특한 의미를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 창세기 22:2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고 한다.

여기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삭이 그의 아버지의 뜻에 순응하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과 그 준비성이다. 이와 같이 이 제물에 있어서 중심사상은 헌신됨(devotedness)이다.😎

번제에 대한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위로 올라가다" 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올려놓은 제물"이라고 적절히 칭할 수 있다. 그것 전체는 번제단 위에서 타서 향기로운 냄새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레위기 1장에 보면 번제물에 대하여 상세한 사항이 제공되어 있다. 3절에서, 그 드리는 자는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로 한다.

이 제물은 실제로 다른 모든 제물들의 기초가 되었는데, 이는 레위기 1-5장에 앞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제단 자체의 이름이 "번제물을 드리는 제단"(출 40:10)이라는 이것으로부터 취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성부에 대한 성자의 완전한 헌신을 예표하였는데, 그것은 그의 전체적인 지상적 생애, 사역, 그리고 희생적 죽음의 근거 또는 원천이었다. 그분은 자신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다.

그가 말하거나 행동할 때, 그분이 구하였던 것은 항상 성부의 영광이었다.😎 그분이 이르시기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하며 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시 16:8)라고 한다.

에베소서 5:2에 이 특별한 모형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고 한다.

"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출 29:38, 39).

인간의 방법에 따라 말하자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복된 아들(성자)의 헌신을 계속 기억하도록 하는 어떤 것을 그분 앞에 있도록 하신 것 같다.🎵

그러므로 수송아지나 숫양(그리스도의 힘과 충족성을 좀 더 예표했던 것)보다는 오히려 어린 양이 지명되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분의 온유함과 청종을 더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일이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서 항상 지켜져야 한다는 것도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역의 측면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의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하여 이 땅에 주 예수께서 오셨지만, 그것은 다만 그가 그렇게 하도록 한 성부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었다(비, 히 10:7; 10:10).

"우리 앞에 있었던 제물이 계속 반복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제물의 향기와 특성 속에서 이스라엘이 용납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하나의 기초를 놓으셨다.

그러므로 이것은 신자의 지위에 대한 훌륭한 모형이 되는 것으로, 그의 사랑하시는 이(the Beloved) 안에서 그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드러낸다. 마치 계속해서 드린 제물의 아름다운 냄새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언제나 하나님께로 올라갔던 것처럼, 그분의 모든 수용가능성의 상태에서 그리스도는 그 자신을 대신하여 항상 그분의 면전에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한 것'(요일 4:17)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주님의 희생의 모든 향미와 그분의 인격을 최대한도로 받아들이는 만큼 하나님의 임재 내에 있기 때문이다"(Ed. Dennett).

우리는 이 아침과 저녁에 계속해서 드린 번제물 속에서 우리 자신의 영혼에 대한 실천적 교훈의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다른 이에 의하여 적절하게 표현되었다.

이르기를 "하나님은 그가 우리와 함께 하는 그 관계를,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의 감정 속에서 새롭게 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신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며 또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신선한 느낌, 즉 그리스도의 향긋한 향기와 받아들임 속에서, 매일을 시작하고 끝내기를 바란다.😎

그는 성도들을 그분 앞에 두실 때, 그를 완전히 영화롭게 하셨던 이, 그의 모든 뜻을 행하셨던 이, 그로 인하여 무한히 기뻐하셨던 그리스도 외에는 결코 다른 그 어떤 근거를 주시지 않는다.

그는 그 근거로부터 결코 떠나지 않는다. 그것보다 다른 것이나 더 낮은 근거에서 성도들과 전혀 만나시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분은 그것에 대한 인식을 우리의 편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갖도록 할 것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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