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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288]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288]

En Hakkore 2024. 6. 30. 14:53

계속 드리는 번제(출애굽기 29:36-46)

"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와 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더할지며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리되 아침에 한 것처럼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삼을지니"(출 29:40, 41).

이것은 번제에 동반되는 것이었다. 소제(the meal-offering)는 때때로 "번제와 그 소제"(레 23:13, 18; 민 28:31; 29:3, 6, 9)로 언급하는 것과 같이, 번제에 추가되는 것으로 자주 말한다.

'음식'(meat) 혹은 '소제' 에 대해서는 레위기 2장에서 길게 설명되어 있다. 그것은 성자가 그것을 통하여 성부께 자신의 헌신을 분명히 보여주었던 그 거룩하고 완전한 인성을 예시하였다.

소제와 함께 썪은 것은, 찧은 기름 한 힌(hin)의 사분의 일이었다. 이것은 성령의 역할 밑에서의,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탄생의 신비를 예시하였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르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하심과 같다.

이와 같이, 역시,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모든 생애와 사역은 성령으로 가득 찼다. 그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려고 광야로 이끌림을 받은 것도 성령에 의한 것이었으며(마 4:1), 또한 시험 받으신 곳으로부터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셨다"(눅 4:14).

그는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 내셨다(마 12:28). 그는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흠 없이 드렸다(히 9:14). 그리고, 심지어 부활하신 후에도 "성령을 통하여" 사도들에게 명하셨다(행 1:2).

번제와 동반하여 전제(a drink offering)가 또한 있었는데, 그것은 "포도주 사분일 힌"으로 이루어졌다. '포도주' 가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중대성의 하나는 즐거움이었다(삿 9:13; 시 104:15 참조).

그러므로 현재의 모형에서, 동반되는 전제는 그리스도로 인한 아버지의 즐거움을 말하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심과 같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도 이것은 여기서 여호와의 백성들에 의하여 드려졌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의 아들의 완전하심과 헌신으로 인한 하나님의 즐거움과 그들이 함께 교제함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그를 기쁘게 하는 잔치를 우리에게 베푸실 것이다. 이 사실은 탕자의 비유에서 아름답게 묘사되었다.

방랑자가 뉘우치고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께서 이르시기를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눅 15:23)라고 하셨는데 이는 아버지와 그의 자녀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함께 즐기는 것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연관시켜 볼 때, 42절의 말씀은 인상적이다. 즉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고 한다.

헌신된 성자와 그분의 완전한 인성에 동참하는 것은 매일 계속되어져야만 하고, 그리고 매일 아침과 저녁에 이러한 것에 대한 모형이 이스라엘에 의하여 하나님께 드려져야만 하였는데, 거기에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함께 드렸다.

41절 말씀을 다시 살펴보자.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리되 아침에 한 것처럼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삼을지니."

이 계속 드려지는 아침 제물은 옛날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심과 동일하며, 이 구약에 나타난 저녁마다 반복되어진 제사는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하신 말씀과 동일한 것이 아닌가!

신자들의 우울함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시무룩한 신자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추천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비참하게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는 그의 사도 중의 한 사람을 감동시켜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일 1:4)고 쓰게 하시지 않았던가? 만일 그리스도인이 슬프고 비참하다면 그 잘못은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방금 인용한 바로 성경의 그 앞 절에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고 주어진다. 이러한 교제가 실제적으로 유지됨에 따라, 우리의 기쁨은 충만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기쁨이 부족한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결여된 탓이다.😎

그렇다면 이것에 대한 치료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모형을 말해 준다. 즉, 매일 시작하고 끝맺을 때마다 우리의 심령을 그리스도로 새롭게 채우고, 그의 탁월함 - 아버지께 전적으로 헌신하심과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의 사랑 -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동반하여 반드시 '기름' 이 있어야만 하는데, 이는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를 '생각' 하려면 다만 성령님의 도움과 권세로써 할 수 있기 때문이다(히 3:1; 비, 요 16:4).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복종하여 성령님으로 채워지는 정도로, 그리고 그 정도로만, 역시 기쁨으로 채워질 것이다. -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이 '기름 사분의 일 힌'과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살펴보라(40절)!

이 사실이 다만 우연적으로 발생한 것이거나 또는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 아님을 보이기 위하여 독자로 하여금 민수기 15:6, 7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거기에 보면 비록 기름과 포도주의 양은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그것들의 비율은 똑같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되길 바란다(느 8:10).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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