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Exodus 265]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265]

En Hakkore 2024. 6. 28. 12:37

제사장의 직분 3(출애굽기 27:20-28:2)

더 나아가서, 이러한 '회막'이라는 최초의 언급은, 현재와 관련해서 볼 때 -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를 만족하게 해드린 것과 성령이 강림하신 결과로 일어난 -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그러한 교회 형성에 대한 암시를 제공하지 않는가?

마태복음 16:18에서, 주님께서는 현재시제로 괴롭히지 않고 미래시제를 사용하였다. 즉,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였지, 세우는 중이라고 하지 않았다. 에베소서 1:20-23에서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그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는 만물 위에 있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이와 같이 교회는 거룩한 요구가 충족되고, 하나님의 보좌가 영원히 서며, 그리고 이 일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증거가 된 이후에야 교회가 (상징적으로) 나타났다. - 행 2:33 비교.

다시 말하자면, 처음으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진 곳은 출애굽기 27:21이다. 이것 역시 이중적 중대성을 가지고 있다. 20절에서 '백성'들을 언급하신 바로 다음에, 그들을 위하여 제사장직이 제정되었음을 말해준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출애굽기서 24번이나 언급되었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불을 켤 기름을 마련하도록 지시하시기 전에는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이 그의 백성을 통한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명백히 예시해 주었는가!

이 지점에 이르기까지, 성막 사역의 집무 이행을 위하여 어떤 인간 매체나 사역자가 그 누구이든지 간에 일절 지명된 일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전에 살펴본바 하늘에서 드리워주신 그늘과 영원한 진리의 상징 가운데에서, 즉 인간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에서, 그들 스스로 기뻐하도록 지명된 어떤 사람이나 사역자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우리는 빛을 본다(시 36:9). 빛이 나타난바 되었으니 - 이제 거룩하게 택함을 받은 성소의 사역자가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스라엘의 제사장직을 소개해 주고 있기에, 우리에게는 소중한 지침이 풍성하지만, 오호라, 성도들 대다수는 완전히 문외한이다.

60년 전에 하나님의 종 한 사람이 이렇게 썼다. "지성적인 기독교인으로 간주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성경을 다만 기계적으로만 읽는 자들에게는, 성막과 그 제사장직, 섬김, 그리고 제물들이 상징하는 것은 위로와 교훈이 되지 않는다.

아직도 그것들은 하나님이, 그렇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저자세로,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르치시는 그림들이라고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또한, 영적인 진리에 대한 이 같은 보물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신약성경에 소속된 모든 학자들의 손에 준비되어 있음을 보편적으로 승인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보물들이 특별히 연구하지도 않은 채로, 그렇게 보편적으로 무시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제의가 우리 가운데 가장 진지하게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러한 사항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 상징을 도외시하는 진정한 비밀은, 부분적으로 이런 점에서 추적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즉 그것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에 이르게 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영적 이해력을 요구합니다.

그것들을 이해하려면 일정량의 영적 능력과 하나님의 일에 관한 습관적 훈련이 요구되는데, 이런 것들은 모든 사람들리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의 변함없는 교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피상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말씀을 응시한다고 해서 읽는 자들의 마음에 일치하는 개념에 이르지 않습니다.

사실상, 그 모형들은 그림들이지만, 그 그림을 이해하는 데는 실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합니다. 남쪽 바다의 미개인에게 증기기관에 대한 가장 완벽한 설명은 전적으로 그리고 절망적으로 난해한 이야기가 될 것은, 단순히 현실이 즉, 그에게 설명하는 것에 대한 개요가 지금까지 알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으로 말하는 일을 스스로 저지한 것(히 5:11, 등)은, 그 말을 듣는 자들이 그들의 영적 수준의 유치함을 인하여 그러한 교훈을 받아들이기에 능력이 부족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왕의 아이는 그가 태어난 위엄과 유업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왕의 아들입니다. 그와 같이 아기로 머물러 있는 것 같은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이 생명을 가졌고, 자녀인 것에 분명히 만족해하기에, 그렇게도 젖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영적인 유약하고 비활동적인 것에 대해 설명을 해 줍니다. 물론, 아기는 젖을 먹여야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계속적으로 아기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사도가 한 말, 곧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히 6:1) - 어른 -로 나아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의 상태가 되라고 권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광야의 이정표(Waymarks in the Wilderness)').

그 당시 이후로,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언제나처럼 '아기'인 상태로 보인다. 대부분의 성경이 그들에게는 인봉된 것 같아 보인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유익하니"(딤후 3:16). 그런 이유에서 어떤 부분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 될 수 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롬 15:4), 만일 우리가 모형들(types)에 대해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더욱더 빈약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것은 우리 앞에 있는 주제가 지니고 있는 상황이다.

평균적인 신자들은 제사장의 직분에 대하여 상당히 희미하고 부적당한 개념들을 품고 있다. 주 예수께서 그 백성의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것은 알지만, 그리스도의 제사장 지위와 그 활동의 본질, 다른 진리에 대한 연관성(특히 구속에 관한), 즉 그것에 의하여 성취된 의도, 그것으로부터 보장된 축복, 그것 덕분에 성도들이 누리는 분량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에 아주 분명하지 않게 규정되어 있다.

십자가상에서 구주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그리고 그와 불화한 백성이 그와 더불어 화목하는 데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성취되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의 현재 사역의 필요성은 어디에 있는가? 만일 주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대속했다면, 왜 그분은 지금 우리을 위하여 간구해야 하는가?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껴온 어려움이지만, 동일한 문제점이 출애굽기에도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모형적으로) 구속함을 받은 백성을 보는데, 그들은 어린 양의 피 뿌림으로 심판으로부터 보호를 받았고, 얽매였던 집으로부터 이끌어냄을 받았고, 여호와께 속한 것으로 구별되었고, 그들 가운데 여호와께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위하여 활동할 제사장이 지명되었다! 왜 그런가? 동일한 출애굽기에서 그 해결책을 드러내어 준다. 제사장의 직분은 여호와에 대한 그들의 관계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지하는 데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연약함으로 둘러싸인 백성이었기에, 유혹에 좌우될 뿐만 아니라 오호라, 종종 실패하였다.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은 부정한 것을 묵인하실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에게로 가까이 이끌었던 그 동일한 은혜로 그들이 계속 가까이 하기 위한 대책을 즉시 마련하셨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489

'강해시리즈 > 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odus 267]  (0) 2024.06.28
[Exodus 266]  (0) 2024.06.28
[Exodus 264]  (0) 2024.06.28
[Exodus 263]  (0) 2024.06.28
[Exodus 262]  (0) 202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