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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262]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262]

En Hakkore 2024. 6. 28. 12:14

바깥뜰(출애굽기 27: 9-19)

5. 받침

"그 받침은 놋이며"(출 27:18).

이 내용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받침들'은 기둥의 기초를 이루었다. 그것들을 만든 '놋'은 불의 작용을 견디는 능력, 즉 인내를 말한다. 죄인들의 대속물 위에 쏟아진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소멸되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모형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성도들은 그 위에서 그들의 모든 축복이 세워졌음을 명심해야 한다.

6. 갈고리와 가름대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출 27:11).

이러한 '가름대'는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 주는 막대기였고, 그리고 갈고리는 세마포장을 가름대와 연결하게 했다. 이것들은 우리의 현재의 모형에서 매우 중대한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가 앞에 있었던 장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은'은 구속의 상징이고,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거룩한 의와 거룩한 은혜가 결합되었다. 우리의 의가 되신 그리스도와 우리의 구속자가 되신 그리스도 사이에는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즉 이 둘은 결코 떨어질 수 없다. 주 예수께서 그의 피로 우리를 속량하시지 않았다면, 칭의는 결코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예배자들은 그들이 바친 속전으로 만든 은 받침 덕택으로 성막의 널판들이 안전함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또 뜰에 있는 고운 세마포장들이 동일한 속전으로 만든 은 기둥머리와 고리들에 단단히 걸려 있었음도 알았을 것이다. 이것은 뜰 안으로 들어갔던 자들의 복됨에 대하여 기록한 어떤 사람에 의해 아름답게 설명되어졌다.

- "벽은 외부를 차단하였으나 이제 그가 안으로 들어왔으므로, 그것은 그를 안으로 차단하였다. '의'에 의하여 거슬림을 받는 대신, 그는 이제 그것에 에워싸인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죄인이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한 그는 그 사람을 반드시 거절하시지만, 일단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에게 나아오기만 하면 모든 것이 역전하게 되니, 이는 '그가 의로우사,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시는 자'이시기 때문이다(롬 3:26).

그러나 어떻게 하여 이 일이 이루어지나? 그것은 이 고운 세마포에서 제시된 방식에 의하여 준비된다. 그 세마포(의)는 놋(심판)에까지 이르지 않고,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은 가름대에 의하여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로마서 3:24에서 분명히 말씀하신같이, 우리는 상징적으로 그 진리를 가지고 있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C. H. Bright).

이와 같이 뜰로 들어간 구속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속의 증표에 의하여 받쳐진 의의 벽에 의하여 둘러쳐졌다. 이는 피난처를 위하여 그리스도께로 피하였던 모든 죄인들의 복된 몫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허여 죄가 되셨고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기 때문이다(고후 5:21).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거룩성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는 권세가 부여되어있다. 그렇다면 믿음을 가진 각 독자들을 필자와 더불어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니"(사 61:10)라고 함께 말한들 어떠하리.

7. 출입문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출 27:16).

뜰의 출입문을 형성하였던 이 '장'(hanging)은 휘장(Veil)과 성막의 문(Gate)과 사상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것들은 모두 문으로 기능을 하면서 바깥에서 들어오는 자들로부터 내부를 숨긴다.

그 모두가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고, 그 색깔들도 같은 순서로 언급되었고, 그 모두의 치수는 비슷하여, 그 각각이 사방 10평방 규빗이 되었다. 이 상징적인 막들의 각자에 의하여 동일한 진리가 구체화되었다.

즉 이는 '나는 길이라' 고 하신 이를 떠나서는 어떤 형태 - 비교적 거리가 있는 예배나 또는 좀더 친밀한 예배나 - 로서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말해준다.

제물을 가지고 번제단으로 가는 이스라엘 사람은 반드시 이 뜰에 있는 출입문으로 통과해야만 하며, 금 향단에 향을 드리는 제사장은 반드시 휘장을 통과해야만 했는데, 이와 같이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실감나게 표현된다.

문에 대한 원형적 가르침은 요한복음 10:9에 있는데,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라고 하셨다. 그러나 어떤 이가 관찰한 것처럼,

"그것은 문에 대하여 생각한다거나 그가 문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문으로 들어가야 결과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점에서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출입문 주변에는 반쪽(semiĺ)- 신자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문이라는 것과 그것이 단 한 개밖에 없다는 것으로 믿고 있지만, 발길을 옮기지는 않는다. 그들은 영 단번에(once for all) 그분 속으로 피하는 대신에, '나를 당신안으로 피하게 하소서' 라고 언제나 말하고 있다.

오! 왜 지금 즉시, 그리고 단번에 영원히 그를 감히 믿으려 하지 않는가?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을 받아들일 것을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여러분이 밖에 머물러 있는 한, 어떻게 느끼겠는가?

예수께서는 들어가지 않는 자와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들어간 자와 하셨다. 들어만 갔다면, 느낌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당신이 구원받았음을 알 것은 그가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이다.

번제단은 출입문 바깥에 있지 않고 안에 있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들어가지 않고서는 어찌 구원받았는지를 알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의 모습 그대로, 당신의 모든 죄악 속에서, 아무 느낌이 없다 하더라도, '은혜의 표'에 대한 아무런 의식이 없을지라도, 죄인으로서 죄인의 구주되신 이를 믿으라."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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