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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제단(출애굽기 27: 1-8)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놋제단(출애굽기 27: 1-8)

En Hakkore 2024. 6. 28. 12:10

놋제단(출애굽기 27: 1-8)

3. 의미

이것은 모든 거룩한 기구들 중에서 가장 해석하기 쉬운 것이다.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린 장소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했다. 그것은 갈보리의 가장 장엄한 측면을 가리켰다.

주 예수는 제단과 그 희생과 또한 거기에서 직임을 수행하는 제사장들 모두의 예표였다. 지금 우리들이 다루는 상징에 있어 두드러진 것은 놋이 제시해 주는 사실이다. 이것은 모든 금속 중에서 가장 단단한 것으로, 금이나 은보다 훨씬 불에 대한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신명시 33:35과 예레미야 1:18에 보면 '놋'은 견디는 능력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우리 구주는 하나님의 거룩한 불이라는 그 무서운 강도를 견디는 힘을 소유하신 참 놋번제단이었다.

오직 그분만이 십자가를 견디실 수 있었다. 오직 그만이 하나님의 심판의 폭풍 아래에서 견디시고, 소멸되지 않을 수 있었다. 번제단 위에 있는 놋판이 강렬한 열과 연소됨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연소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통과하셨다. 그가 구원하시기에 능하심은 견디시기에 능하셨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성경에 있는 '놋'은 심판을 상징한다. 이러므로 장대 위에 '놋뱀'을 매달도록 지시하심을 받은 모세에게서, 우리는 엄숙한 우선순위를 본다.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를 '뱀'으로 나타낼 수 있었을까 하고 의아하게 여겼다.

분명히 그것은 인간의 자녀들보다 더 공평하신 주님을 묘사하는 데 가장 적합한 표현이었다! 이 말은 조금도 어폐가 없다. 사실상, '뱀'은 거기에서 미리 예표되었던 구속자의 죽으심의 특별한 측면을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는 모든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유사한 것이었다.

'뱀'은 '저주'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으며(창 3장), 그리고 갈라디아 3:13에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저주가 되셨다"고 하셨다. 장대에 붙들어 세운 대상물이 뱀에 물린 이스라엘의 눈앞에 나타난 것 때문에, "저주를 당한" 분(뱀의 형태로)으로 주 예수를 선뜻 가리켰다.

니와 동일한 이유로, 그 뱀은 은이나 금으로가 아닌, 놋으로 만들어졌다. 우리의 저주가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그리스도 위에 내려졌고, 하나님의 정의의 칼날이 그를 쳤었다(슥 13:7).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가 나타난 곳은 번제단이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죄에 대한 증오와 그것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있다.

사랑하는이여!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죄가 주님 앞에 나아가는 일에 얼마나 합당하지 못한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가운데서 가장 나은 사람인 이사야가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이끌림을 받아서, 더럽혀지지 않은 순전한 주님의 인격을 보고, 날개로 그들의 얼굴을 가리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외치는 스랍(어떤 더러운 것과도 일찍이 접해본 일이 전혀 없음)들을 보았을 때,

그의 마음으로부터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하는 말이 우러나왔다.

그가 한편으로 하나님의 거룩함과 그분의 보좌의 의로움과, 하늘의 영들의 심원한 숭배를 보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사악함과 그와 함께 거하고 있는 백성들의 부정함을 보았을 때, 그는 여기서 그의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극심한 거리가 있음을 보고 "화로다 나여" 라고 외쳤다.

다른 이가 지적했던 것처럼, "앞서 보았던 장에서, 이사야는 각기 다른 여섯 부류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여섯 가지의 화를 명하였지만, 그가 여호와의 임재에 이끌림을 받게 되자 그는 그 일곱 번째를 자신의 죄로 괴로움을 당했다.

즉시 이 일에 주의하고 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은 그 일들이 이사야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하여 그의 손의 힘으로 그것들을 제거할 수 있단 말인가?

또는 그의 눈물로 씻거나 그 자신의 어떤 수고로 그것들을 제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만일 하나님과 그 보좌의 광경과 그렇게 거룩하신 이의 임재에 적합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으로 인하여, 스스로에게 심판을 선고하게 하여 티끌 가운데서 그가 있게 된다면, 그것은 또한 그로 다른 일을 볼 수 있도록 낯추었는데, 그것은 제단 곧 제단의 예비하심이었다.

타는 숯불이 그 일을 행하였다. 즉 희생제물은 타버렸기에, 남은 것은 오직 '타는 숯불' 뿐이었는데, 이것이 이사야의 입술에 닿으면서,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 6:7)는 감미롭고 복된 확신이 주어졌다.

그의 얼굴에 근심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리고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을 믿음으로 거룩한 즐거움의 빛이 그 대신 그에게 다가 온 것이다"(Gospel Add. on the Tab, by A. H).

독자는 이사야서 6장이 무엇을 묘사하는지 아는가? '제단' 은 그리스도요, 타는 숯불에 의하여 태운 희생제물은 가련한 제물을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행하신 주님의 사역을 말한다. '타는 숯불'은 자신에게 저촉되는 것을 소멸하는 하나님의 거룩함의 형상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을 모든 자를 위하여 "죄가 되셨을 때"(고후 5:21), 여호와께서 그를 "상하게 하며" "그를 슬프게 하며" "그의 영혼을 죄의 희생이 되게 하심"(사 53장)을 기뻐하셨다.🎶

그때에 "타는 숯불"이 그에게 닿자, 주님은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시 22:14)라고 외쳤다. 그렇다, 숯불은 그 일. 즉 기이한 일(사 28:21)을 행했으며, 희생제물이 드려졌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상달되었다.

그리고 그 "타는 숯불"(하나님의 거룩함의 형상)은 지금 제단에 놓여 있어, 죄인들이 이사야가 취했던 자를 취하여서, 그가 했던 것처럼 자신에 대한 심판을 경험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면 그 순간에 그의 부정이 제하여 지고 그의 죄는 사라지는 것이다.

뜰 안에 있는 번제단은, 성막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있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만나는 장소가 여기였다. "내가 거기서 너희를 만나고"(출 29:42, 43)라고 하심과 같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이제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만남의 장소이다.😎

"거기에서 성취하신 일을 근거하여 주님은 의로울 수 있고 그리고 예수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는 자가 될 수 있다. 주님이 죄인들을 그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하는 다른 근거가 없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단을 거절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로부터 스스로를 영원히 차단하는 일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면 구원의 소망으로부터 스스로를 영원히 차단하는 것이다"(E. Dennett).

출애굽기 29:37에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고 하신 것은 형용할 수 없이 복된 말씀인데, 이와 같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드는 모든 죄인들은 깨끗함을 얻는다(비교, 막 5:27-29).😎

성막에 있는 다른 기구들 가운데 두 개의 '단들' 만이 '지극히 거룩' 하다고 말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다른 기구들은 '거룩하다'고 불리어 졌지만, 금 향단은 한 번(출 30:10), 번제단은 두 번(출 39:37; 40:10). "지극히 거룩" 하다고 명명되어졌다.

그 이유는 먼 데 있지 않은데, 이는 하나님의 거룩성이 너무 돋보이게, 그리고 진지하게 나타났던 곳은, 특별히, 갈보리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너무도 거룩하셔서 그의 백성의 죄악이 그 위에 씌워졌을 때 그의 사랑하는 아들까지라도 허용할 수 없었다(롬 8:32).🎵

비록 번제단에는 그것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었지만(출 20:26), 레위기 9:22에 보면 그것을 높은 지대에 세웠음이 분명한 것은, 아론이 번제단에서 섬긴 후 '내려왔다' 고 하였다.

거의 확실하게 바깥뜰의 지면은 위로 경사졌던 것 같으며, 이같은 오르막길의 꼭대기에 번제단이 서 있었다. 이는 얼마나 구주께서 골고다라고 불리는 언덕 위에 "높이 들리었음"을 기억하게 하는가!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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