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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250]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250]

En Hakkore 2024. 6. 27. 10:50

성막의 문(출애굽기 26:36, 37)

3. 색깔(2)

"이제 이러한 아름다운 광경에 비추어 홍색에 관하여 참조해 보자. 인자 외에 그 누가, 그 준비된 사랑이 무례한 조롱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친절과 동정의 길을 추구할 수 있었겠는가?

또 굶주림과 갈함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가, 그 전능하신 이적에 덧붙여,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했겠는가? 그리고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자색'을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주님은 그 아이에게 어머니보다 더 깊은 동정과 사랑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서 그리고 그 위에서 누가 주님이었는지를 그 장면에서 드러내셨다.

주님은 죽은 자를 불러 살게 할 수 있고, 동시에 작은 소녀의 아주 하찮은 소원을 알아차릴 수 있다. 거기에 있었던 단순한 사람들과 그의 부모마저도 그들이 목격하였던 것과,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 받아들이는 기쁨에 너무나 압도당하여서, 그들의 인간적인 동정심은 쓸모가 없게 되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죽음을 폐지하실 수 있고, 오직 하나님이요 인간이셨던 자만이 그와 같은 능력, 위엄, 은혜, 연민, 그리고 가장 부드러운 돌봄을 겸비할 수 있었다! 😎

"다음의 경우는, 이미 암시한 바 있지만, 그 동일한 아름다운 색깔들을 적으나마 풍부한 문장으로 묘사한다. 청함을 받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그가 아시기에 죽음의 일격이 엄습하여, 이미 슬픔을 당한 또 다른 가슴에 또 다른 상처를 가져다 준 그 도성으로 가셨다.

그는 성문에서, 과부의 독자를 무덤으로 메고 가는, 애도 행렬을 만날 수 있도록 때를 맞추어 그곳을 방문하셨다. 어느 때 하나님의 개입이라는 어떤 소망이 그녀에게 기운을 나게 했더라도, 그런데 죽은 아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러한 소망마저 이제는 사라지고 말았다.

잠시의 막간이 남아 있었지만, 흙이 그의 잃어버린 아들 위에 메우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극한적인 상황에 이끌리어서, 아버지를 선포하였던 주님(요 1:18)은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주님은, 하나님의 권세로써 관에 손을 얹으시고, 무덤으로 가는 그들의 행렬을 멈추게 하셨다. 그들의 길을 멈추게 하는 권세를 가졌던 자의 임재에 대한 갑작스런 느낌에 사로잡혀, 그들은 조용히 멈추어 섰다.

그들은 전번에 사람이 죽은 곳에 모였던 사람들처럼 그를 비웃지 아니하였기에, 그들은 주님의 놀라운 행동을 증거하는 축복을 가졌다. 주님은 마치 아이를 그의 침대에서 일어나라고 명하셨던 것과 같이, 그 젊은이를 관에서부터 일어나라고 명하였다.

그는 같은 방법으로 그 명에 순종하여, '죽었던 자가 일어나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늘의 색깔이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기에, 심지어 이 일을 본 자들이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방문하셨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은 아이에게와 마찬가지로 그 어머니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살아난 청년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을 때, 그는 그 과부가 그것을 들을 때, 어떻게 느낄 것을 알고 계셨다.

주님은 자신이 생명을 제공한 능력을 행한 일에 의하여 동요되지 아니하시고, 어머니로 아들을 껴안아보면서, 눈으로나 귀로나 그 어떤 증거로도 믿기 어려운, 그 현실에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자 하는 열망을 공감하는 선의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그 어머니에게 그를 넘겨줌으로써 이 장면을 완성시키셨다.

이는 인간의 감성으로 완벽한 것이었으니, 그 사람이 또한 하나님이지 아니했다면, 어느 누구라도 그러한 처지에서 그렇게 보일 수 없었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었음'에 대한 가장 완전한 표명은 아마도 요한복음 11장에서 발견되어야만 한다. 즉 만일 우리가 언제나 그렇게 해야만 하듯이, 그 십자가를 제외한다면(모든 것이 여기에 놀랍게 집중되었음). 그 자매들의 긴급한 연락을 주님이 이상하게도 무시하였던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주님은 여전히 먼 거리에 거하면서, 죽음이 그들의 오빠를 빼앗아가도록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무덤이 그의 유해를 덮도록 허락하였기 때문이다.

또 그들의 통지('주여 당신이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에 대한 그분 자신의 대답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을 그 안에 담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어지는 상황에서 분명히 거짓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분의 대답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그는 나흘 동안이나 지체하여 죽음이 그 희생자를 잡아두기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잠시 동안, 사랑이시고 진리이신 주님 안에 있는 사랑과 진실이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사랑하는 자 안에서 더욱 빛나게 된 것이었다.😎

"교차된 감정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얼마나 차지하였는지, 주님은 그때 마리아와 그 주위에 있는 자들의 슬픔을 보면서 심령으로 신음하고 고통을 당하였다! 주님은 그들의 불신과 무지 또는 자신에 대해 슬퍼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동정심에 차서 그들과 함께 울고 그리고 그분의 임재하심으로 만류할 수 있었던 그 슬픔에 대해 슬퍼하였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누가 그러한 처지에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까?🎶

단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죽은 자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선물로 받았기에, 그는 그 막강한 권능과 덧붙여 애곡하는 자의 슬픔을 오히려 보여주기를 열망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덤에 가는 동안 흐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주님은 완전한 인간이 어떠한지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보다 분명히 더 나은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진정한 인간의 감정에서 나온 것이므로 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가장 소중한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그분의 마음에서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눈물들이 그의 눈에 하염없이 흘러내릴 때, 그의 사랑에 대한 모든 의문들은 끝이 났다. 그래서 유대인마저도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시는가' 라고 흥분하여 외친 것이었다.

"주님은 권위를 가지고 관에 손을 얹었고, 그리고 돌을 옮기도록 명하셨다. 그러나 마르다는 이의를 제기하였다. 물론 그녀는 그리스도를 주로 모셨을 뿐만아니라 그의 입술로부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기이한 말씀을 들은 바 있지만, 이미 부패된 사람이 치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들이 예수님께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전하도록 하였을 때, 주님은 대답하였던 그 메시지를, 그때에 그녀에게 생각나게 하였다. 그것은 죽음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대답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언제나 주님의 목적이었다.🎵 주님은, 그 영광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를 가까이 하지만 주님이 자신들을 도우려고 즉시 오지 않았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자들의 의혹을 기꺼이 견디었다.😎

"바야흐로 무덤이 열려지자, 예수님은 자신의 시선을 사망의 은신처에서부터 위의 하늘로 올려두셨다. 그리고 그의 영혼을 아버지의 품에 맡기시고, 전능하신 음성으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시기 전에, 먼저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로 하나님을 의지함에 대해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복종과 권위, 순종과 명령, 열려진 귀와 그 위대한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I am)는 것 사이의 얼마나 놀라운 융합이 존재하는가! 죽은 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자, 밖으로 나왔다.

부패한 송장이 생명으로 나아왔다. 그들의 형제들뿐만 아니라 그 여동생들에게도 정말로 놀랍고 즐거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시 주님만이 이러한 놀라운 능력의 행위에 대한 아주 작은 상세한 일들을 착수하였다.

그는 친구가 아직도 무덤의 흔적으로 방해를 받고 있음을 보았거나 아니면 느끼시고(그가 나사로를 사랑하셨으므로), 사람들이 놀라면서 깨닫게 되도록 두지 않고, 부활한 자를 속박해서 괴롭혔던 수의를 알아보시고, '그를 풀어서 가게 하라'는 또 다른 명령을 내렸다"(Mr. G. Soltau).😎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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