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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238]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238]

En Hakkore 2024. 6. 26. 12:04

널판(출애굽기 26:15-30)

지금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원래의 성막의 틀과 기초이다. 성막의 측면은 아카시아 나무(조각목) 널판(board)으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서로 맞추어 조립된 것으로, 은으로 된 받침대 위에 꽂여 있었다.

성막은 뜰의 서편에 위치하여, 문을 마주 대하고 있었다. 그 견고한 틀은 48개의 널판으로 되었는데, 20개는 북편, 20개는 남편, 서편은 6개로 각 끝에는 모서리용 널판이 있었다.

동편 또는 전면은 입구로서 그 중간에 '문을 매달아 놓은 것' 이 걸려있다는 다섯 개의 기둥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별도로 고찰할 것이다. 이 모든 널판들은 금으로 쌌다.

"북쪽과 남쪽 측면은 각기 20개의 널판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거룩한 건물의 길이는 30규빗(13.5m)이 되었으며, 널판들은 그 폭이 1.5규빗(68m)이었다. 그 높이는 10규빗(4.5m)이었고, 그 너비는 정확히 똑같은 10규빗(4.5m)이었다.

각 널판은 두 개의 뾰족한 촉, 또는 이음매에 의하여 유지되었는데, 그것은 다시 두 개의 은 받침 구멍에 물려 단단히 고정되었다. 그 후에 전체를 튼튼하고 안전한 하나의 꽉 조인 몸체로 묶기 위해, 조각목에 금으로 입힌 - 널판과 마찬가지로 - 다섯 개의 띠(bar)를 양 측면과 서쪽 끝을 따라 둘렀다.

그 모두를 합한 15개의 띠는 널판에 부착된 금으로 만든 고리에 꿰었다. 셋째 또는 중간의 띠는 건물의 전체 길이인 45피트를 가로질렀으나, 다른 가름띠(Cross-bass)의 길이에 대해서는 언급한 바가 없다.

맨 끝 - 북쪽과 남쪽 - 에 있는 모사리용 널판들은 꼭대기와 바닥을 함께 금 고리로 짝을 이루게 했고, 촉과 바닥에 있는 은 받침에 덧붙였다.

그 후에 이러한 모서리용 널판들은 그 끝을 고리와 촉과 받침대 또는 은 받침으로 고정시키면서, 아주 단단하게 결합시켜서 무너지기란 불가능하였다.

그 반면에 측면들은 동일하게 띠에 의하여 보존되고 유지되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우리는 성막 안에서 구체화된 영원한 반석을 볼 수 있다"(W. Scott).

널판들과 그것을 엮었던 물건들의 모형적 의미에 대해 주석자들 측에서 많은 혼란이 있었다. 막과 여러 가지 기구에서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보아온 많은 사람들은 널판에 대해서만은 이러한 일차적 해석을 떠나, 그것들을 그 개인적, 공동적 관계에 있는 신자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성막과 연관된 많은 것이 성도들에게 이차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지만, 우리가 완전히 확신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최초로 그리고 맨 먼저 우리 구주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마음이 가장 먼저 몰두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분에 관한 일이니, 지금부터 우리의 상징의 주요한 의미에 대항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널판과 관련되어 우리의 주의깊은 관심을 요구하는 것은 일곱 가지이다.

1. 재료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출 26:15, 29).

우리가 앞에서 말할 기회를 가진 바와 같이, 조각목은 우리 주님의 인성, 특히 부패하지 않음을 예시하였는데,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에서는 실지로 그것을 "썩지 않는 나무"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탁월한 중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굳게 잡고 그 상징적인 나무가 전달하는 근본적인 진리를 증가해야 할 것이다. 곧 참되고 흠 없는 주 예수의 인성을 증거해야 한다.

여기에서 실수는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것으로, 구주의 인격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주님의 절대적 신성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지나친 열심으로 주님의 인성에 대해 적절하지 못한 개념을 품은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인성은 그의 신성 못지않게 실존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그는 인간의 몸을 가진 체 한 것이 아니라, 그 단어의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영, 혼, 그리고 육을 가졌다.😎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히 2:7).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히 2:14)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딤전 2:5)라고 불리었다.

그러나 그가 인간이 되실 때, 영광의 주님은 흠 없고 완전한 인성을 친히 취하였고, 특별히 "거룩한 이"(눅 1:35)로 칭함을 받았다. 인자는 "죄를 범하지 않으셨으니"(벧전 2:22), 이는 "그가 죄를 알지도 못하셨으며"(고후 5:21), 또한 "그에게는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요일 3:5).

그는 항상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있었고 그리고 변함없이 그러하였다. 이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불경하게 대하는 일이며, 그리스도인의 평화가 근거한 그 기초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부주의하거나, 아니면 불경스럽게, "예수님을 우리의 죄악되고 그리고 우리의 북을 수밖에 없는 본성을 취한 자"로 말하지만, 그런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에게도 역시 구세주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전적으로 죄를 지으실 수도 없었다. 주님의 인성에 죽음의 씨가 결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는 고통과 허약으로 인하여 죽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의 생명을 내려놓았으며(요 10:18), 그리고 죽음에서 주님은 "썩음을 당하지 않으셨다"(행 2:27).🎵

구세주의 동정녀 탄생과 무원죄의 본성은 복음의 메시지이 바로 그 기초에 놓여있다. 그것이 없이는 가련한 죄인들을 위한 좋은 소식의 선포는 존재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주님의 인성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구속자의 신성에 대한 영광스러운 진리이다. 이것 역시 우리의 신앙의 근본적인 부분이며 모든 진정한 복음증거의 기초가 된다.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오직 거룩하신 구세주만이 타락한 피조물들의 짓눌려 있는 필요를 채울 수 있었다. 하나님의 저주를 참으심은 전적으로 인간의 연약성의 자질을 넘어섰다.

즉 그의 신성만이 구속의 중압감을 견딜 수 있었다. 만일 조각목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예시했다면, 금은 그의 거룩한 본성과 영광에 대해 말했다. 우리 앞에서 이 두 가지가 결합된 채로, 하나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신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 14). 우리가 인정하는 심오한 신비이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이 택하신 자의 신앙이 의구심 없는 확신으로 의지하는 축복스런 진리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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