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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237]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237]

En Hakkore 2024. 6. 26. 12:03

덮개(출애굽기 26:7-14)

7. 목적

이러한 염소털 막들은 그 아래에 있는 흰 막들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그 측면과 후미에 있는 금으로 된 널판들을 덮기 위하여 설계되었다. 아래에 있는 이러한 막들로는 그것들이 완전히 드리워지지 않았다.

이쪽 땅에서 천정을 거쳐 맞은 편 땅까지의 거리는 30규빗이었다. 흰 막의 길이는 28규빗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금으로 된 널판들이 양쪽 바닥으로부터 1규빗씩 노출되어 있었다. 이는 아주 어울리는 것이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아름다운 색깔들로 그 위에 수놓은 흰 막들은 인간 가운데 거주하였던 그리스도의 인격의 완전성을 예시하였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행하실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히 가리지 않고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한 규빗(하나는 연합의 수이고, 하나님의 근본적 본성도 그러하다)의 금으로 된 널판들이 성막의 양쪽 바닥에서 흰 막에 의하여 가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염소털 막은 그 길이가 30규빗이었으므로, 그 길이가 흰 막을 덮기에 충분했을 뿐만 아니라 성막의 측면에 있는 금으로 된 널판들을 가리기에도 충분하였다.

하나님이 이로써 암시하였던 위대한 진리는 주님은 인간들 가운데 그의 거처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주님이 거처가 그 모든 부분에서 그의 아들의 희생에 의하여 죄가 완전히 지불되고 사라졌다는 사실을 선포하지 않는 한!

이제 가장 바깥쪽의 덮개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할 것만 남았다.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출 26:14).

한 마디로 말해서, 염소털 막의 밖에 있는 이러한 외부 덮개들은 그의 백성들의 죄에 상응하는 심판을 견디신 주님에 대한 두 가지 견해를 제시해 준다. 즉 그것들은 주님이 하나님의 눈과 인간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는지를 보여준다.

양의 가죽은 먼저 하나님을 향한 측면을 나타내었다. '양'은 제사장들이 여호와를 여호와를 섬기기 위하여 자신을 구별시키는 위임식에서(출 29:26) 사용된 희생제물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께 헌신함을 말한다.😎

이 사실에 아름답게 조화되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여 이삭을 제단에 바치려고 하였을 때 그를 대신하였던 '숫양'(창 22:13)이다.

"숫양은 양 떼의 두목으로서 힘과 위엄을 말하므로, 시편 114:3에서는 이를 비유적으로 묘사하였다. 거대한 산들이 뛰노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위엄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앞에서는 힘세고 능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잠잠해야 한다"(Ridout).

숫양의 가죽은 '붉게 염색' 하였는데, 이것은 죽기까지 헌신함을 분명히 말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이 덮개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우리는 그의 양 떼의 머리로서, 전능자로서의 그리스도를, 하나님만 위해서 살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성부께 대한 그의 완전한 헌신을 나타내는 자로서 예시하였다.

그 다음에, 숫양의 가죽 덮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신 그의 백성(그의 양 떼)의 머리로 예시했다. 마치 아이와 같이 주님의 마음을 차지했던 것은 성부의 일이었다(눅 2:49).

그의 사역의 요지는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내가 하여야 하리라"(요 9:3)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명예를 위한 열심이 그를 삼켰다(요 2:117). 그러나 숫양의 가죽을 붉게 물들였다는 것은 피 흘림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완전히 하나님을 위하여 사셨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그의 생명까지 드렸다(요 10:18). 그리스도의 여러 가지 탁월성은 하나님께 드린 헌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갈보리에서, 인간들은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의 집행을 보았을 뿐이지만, 하늘은 성부에 대한 성자의 무제한적 전대미문의 헌신을 내려려다 보셨다.

숫양의 가죽 위에는 해달(badger)의 가죽이 놓여 있었는데, 이것은 모든 것 중에서 맨 바깥쪽의 덮개였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사람들의 눈에는 이것만이 보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특별히, "주님이 자기를 비웠다"(빌 2:7)라고 하신 사실을 묘사한다.

구유에서 나시고, 업신여김을 받는 나사렛에서 자라나서, 목수의 작업대에서 일한 것은 거칠고 보기 흉한 해달의 가죽이 예시했던 것의 구체적인 실례였다. 이렇게까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시므로, 그의 거룩한 인격의 영광은 죄많은 피조물들의 눈에 가려져 있었다.

"이 사람이 목수가 아니냐"(막 6:3)라고 한 말은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평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업신여김을 받은 나사렛 예수의 외부적인 모습 아래에 놓여있는 그 영적 은혜나 천상적 아름다움, 또는 도덕적 완전성마저 전혀 볼 수 없었다.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요 9:29)고 한 말은 그들이 다만 해달의 가죽밖에 보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의 생애 동안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죽음도 역시 그러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여행할 때 그 통과하는 지역의 광야 부족들이 그 밑에 있는 아름다운 휘장들을 볼 수 없었던 것처럼, 갈보리에 모였던 광분한 군중들은 거기에서 일어났던 일의 소중한 의미를 분별하지 못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사 53:14) 놀랐다. 그는 불경죄 때문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서 맞는다고 여겨졌다(사 53:4).

그들은 주님을 심히 무력한 자로, 십자가에서 나려올 수 없는 자로 여겼다. 그러므로 거칠고 보기 흉한 해달의 가죽은 전반적으로 인간들 앞에 나타난 보배로운 우리 구주의 수치와 굴욕을 말해준다.😎

바깥에 있는 두 가지의 덮개들에 대해서는, 두 아래에 있는 열 장의 흰 막들과 염소털로 만든 열 한장의 막들과는 아주 대조되게, 그 치수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복되고 소중하다.

이는 그러한 덮개들이 예시했던  것이 측정할 수 았는 우리의 능력을 초월했음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 주님의 헌신과 사랑 앞에서의 주님의 굴욕은 심오하고 높았기에 우리의 수단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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