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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231]

En Hakkore 2024. 6. 26. 12:00

휘장으로 덮은 천장(출애굽기 26:1-14)

6. 휘장의 고리
이것에 대한 그 독특한 중요성을 다루기 전에, 먼저 그 용도를 살펴보자. 이것은 휘장들을 함께 연결하기 위하여 지명되었다. 그러므로 열 개의 휘장은 각기 다섯 개씩을 묶어 두 세트로 배치되었다.

"그 휘장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며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결하고"(출 26:3).

성경에 나타난 '열' 이라는 숫자의 의미 중 한 가지는 인간의 의무를 말한다. 그런고로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들이 인간들의 의무의 실패를 나타내고 그리고 밖으로 드러나게 한 이후에, 바로와 그의 군대들은 홍해에서 멸망을 당하였다.  

이방의 세력이 그 종말에 이르게 되면 열 나라들로 이루어질 것이며, 그 이후에 그들의 책임의 쇠약이 아주 명백해질 것이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인간의 의무를 요약하실 때, 그것은 십계명의 형태이었다.

그러나 그 계명들은 두 개의 돌판 또는 다섯으로 된 두 짝의 형태로 씌여졌다는 점에서, 여기의 휘장들과 비슷하다.

첫 다섯 계명들은 - 뒤에 다섯 개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네 하나님 여호와" 라는 말씀에 의하여 서로 연결 되었음 -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의무를 정의하신 것이며, 마지막 다섯은 인간을 향한 우리들의 의무를 말씀하신 것이다.

열 개의 휘장들이 다섯씩 두 짝으로 이루어진 것은 그리스도를 그 백성의 대표자로 삼아 하나님과 인간을 향한 그들의 의무 전체가 그에 의하여 충족되어졌음을 말해준다.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셨으니, 예수님만이 이러한 의무들을 온전히 그리고 완전하게 이행한 유일한 분이시다.😎

휘장들을 서로 '연결시킴'으로써, 그 길이와 너비, 모두가 오히려 더 낫게 보일 수 있었다. "'길이'란 확장(extension)이기에, 생애의 전 과정 동안에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즉 '매일의 길이' 라는 말은 잘 알려진 표현이다. '너비' 라는 말은 '광대한, 넓은' 이라는 어근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은유적 용도를 가지고 있다.

솔로몬 왕은 넓은(너비) 마음을 가졌다(왕상 4:29). 이와 같이 '넓이'는 인생의 성격과 그에 따르는 환경을 제시한다. 이로써 우리 구주의 생애에 대해 말하자면, '길이' 는 그의 전체의 인생행로이며, '너비'는 이것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의 성품과 환경을 생각나게 한다"(Ridout).

그렇다면 이러한 열 장의 휘장들이 각각 28, 또는 7*4 규빗의 길이와 4규빗의 너비라는 것은, 주님이 여기 이 땅에서 우리의 의무를 도맡아 그 완전함을 분명히 보여주셨음을 우리에게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주목하게 됨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휘장 끝폭 가에 고 쉰 개를 달며 다른 휘장 끝폭  가에도 고 쉰 개를 달고 그 고들을 서로 마주 보게 하고"(출 26:5).

"고리들(loops)은 하늘의 색깔인 청색이었다. 그러므로 주님이 하늘에서 오셨고, 하늘에서 사셨으며, 하늘로 돌아가셔야 했던 사실은 그의 전반적인 순종의 생애의 특성을 나타낸다.

하늘의 표시가 그 모두 위에 있었다. 청색 고리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완전한 사랑과 순종을 말하는 것으로, 사랑과 순종은 지상의 삶에서(지상에서 그 책임은 하나님께 대한 그분의 순종과 하나가 되어야만 함) 일치되었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휘장의 두 번째 짝 위에 있는 청색 고리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한 그의 헌신에 있어 하나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완전히 하나님께 바쳐진 삶은 일찍이 없었다. 주님은 심령, 영혼, 마음, 그리고 힘을, 모두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께 드렸다. 그렇지만 이러한 헌신이 주님을 은둔자로 만들지는 않았다.

인간 자신의 의가 기독교의 이름과 연결된 이기적 수도 생활에 대한 일말의 생각도 없었다. 예수님은 그의 아버지를 완전하게 사랑하셨지만, 그러나 이는 인간에 대한 주님의 완전한 삶의 징표였다.

그렇게도 인간을 위한 사랑과 수고로 가득 찬 손이나 혹은 마음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든지 아니면 자선적인 것이 없었다. 그 청색 고리들은 그의 아버지의 뜻에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많은 이적들을 행하셨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일들이 거기에서 끝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하도록 분부했던 일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4)고 하심과 같다"(Ridout).😎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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