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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206]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206]

En Hakkore 2024. 6. 24. 12:13

법궤 2(출애굽기 25:10-16)

6. 법궤의 이름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할 것임이라"(사 9:6)라고 하신 것은 메시야 예언의 언어였는데, 이것은 놀랍게도 법궤의 다른 명칭에 의하여 예표되었다. 법궤의 이름들은 모두 일곱 가지로서, 각기 다양성, 위엄 그리고 숭고함에 있어 놀랄 만하다.

첫째, 법궤(the ark)는 '증거궤'(the ark of Testimony, 출 25:22)라고 칭해졌다. 이것은 아주 자주 불린 이름이다. 거기에 "두 개의 증거 돌판"(출 31:18)의 안전한 보호를 위하여 그것을 놓아두었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되었다.

법궤의 이러한 명칭이 붙은 것은 그것이 여호와의 거룩성과 은혜, 위엄과 낮아지심을 증거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렇게 부른 것은 법궤가 가리키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모든 묘락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둘째, 법궤는 '언약궤'(민 10:33)라고 불렀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신성한 사고를 가져주지만 등한시된 주제이기에, 이에 대하여 우리는 주저하는 체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더 나은 증거, 또는 언약"(히 7:23)으로 불리었고, 주님은 또한 그 일에 중재자이시다(히 9:6). 이 언약은 그가 창세 이전에 개입하신 것이요(히 13:20),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신"(삼하 23:5) 언약이요,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에 대한 모든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는 일에 동의하신 언약이다.

셋째, 법궤는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수 3:13)로 불리었다. 이 명칭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직후, 아직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땅이 그들 앞에 놓여 있을 때 사용한 것이다. 그 당시는 적으로 가득했던 때였다.

그러나 확신의 상징과 말씀이 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들 앞에 먼저 나아간 온 땅의 여호와의 궤였다.

이것에 대한 예표적 성취(anti-typical fulfillment)는 여전히 미래의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그 유업이 침범자들에 의하여 점유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가 그들에게 간단한 일을 행하시므로 대적은 추방당하게 될 것이요, 그의 보좌는 안연히 설 것이다(슥 14:9).

넷째, 이 법궤는 "하나님의 궤"(삼상 3:3)라고 명명되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은 그 어떤 다른 어느 성전 기구들에 대해서 자신과 결코 동일시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상징했던 것에 의해, 자신과 동일시했다는 것은 얼마나 적합한가! 그리고 이러한 법궤의 명칭은 인간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그의 완전한 신성을 얼마나 잘 지적하였는가!

다섯째, 법궤는 "여호와 하나님의 궤"(왕상 2:26)라고 불리었다. 히브리어에서 "아도나이 여호와"(Adonai Jehovah)라는 말씀이 있다. '아도나이' 는 언제나 '주권'과 하나님의 축복의 목적에 대해 언급하는 말이다.

'여호와' 는 언약적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이란 뜻이다. 법궤에 대한 이러한 특별한 이름이 그 안에서 발생하는 맥락은 매우 흥미롭고 복된 것이다.

열왕기서의 첫 장에 보면 다윗의 통치 마지막에 이르러 솔로몬의 즉위를 반대하는 음모가 기록되어 있다. 제2장에 보면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후에, 그 음모자들과 동조자들을 어떻게 처단했는지를 들려준다. 즉 아도니야와 요압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제사장 아비아달은 법궤를 담당했으므로 죽임을 면했다.

여섯째, 법궤는 "거룩한 궤"로 불리었다(대하 35:3). 요시야 왕에 의하여 이같이 불리었는데, 그의 당대에는 참된 경건에 대한 복된 부흥이 있었다.

요시야의 통치 이전에 가공할 만한 타락과 배교의 긴 기간이 있어서 법궤는 더 이상 성전에 보관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첫 번째 행동 중의 한 가지는 솔로몬이 건축한 집안에 거룩한 궤를 두도록 명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인격의 거룩성과 위엄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 가운데 능력으로 행하실 때에만 올바로 이해됨을 우리에게 얼마나 잘 보여 주는가!

일곱째, 법궤는 "주의 권능의 궤"(시 132:8)라고 일컬었다. 이것은 아름다운 명칭이었다. 이는 "내가 능력 있는 용사에게는 돕는 힘을 더하며"(시 89:19)라고 하신 말씀과, 또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 이요 "하나님의 지혜"(고전 1:24)라는 말씀을 얼마나 새롭게 기억나게 하는가!

주님의 이름이 복되며, 우리의 구속자에게는 아무 연약함도 없으며 천상천하의 모든 권능이 그에게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사 9:6)이시다.🎵

오,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이여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부터 더욱 가까이 이끌려,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주님의 권능의 완전케 되심을 보이기를 바란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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