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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78]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78]

En Hakkore 2024. 6. 22. 11:07

완전한 종(출애굽기 21:1-6)

모세의 율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이는 도덕법, 시민법, 그리고 의식법을 말한다. 그 첫째는 십계명 안에서 발견되고, 그 둘째는 주로 출애굽기 21-23장에 있으며, 그 셋째는 대개 레위기에 있다.

첫 번째는 인간 피조물로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정의한 것이고, 두 번째는 히브리인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규범을 위한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이스라엘의 종교생활을 고려한 것이었다.

첫 번째에서, 성부 하나님의 통치적 권세를 볼 수 있고, 두 번째에서는 성령 하나님의 영역과 그 활동(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질서를 유지하기)을 볼 수 있으며, 세 번째에는 성자 하나님에 관한 일련의 모형들(types)을 볼 수 있다.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가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출 21:1-6).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사회생활과 시민생활을 위하여 주셨던 일련의 '심판' 또는 법령으로 시작된다. 오늘날 우리를 위한 그 주된 가치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적 적용에 놓여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 축복된 예시를 보는데, 출애굽기 21:6과 비교해서 시편 40:6은 이것에 대해 결정적으로 증거한다.

이러한 위대한 메시야적 시편 속에서, 주 예수는 예언의 영으로 이르시기를,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고 하셨다.

우리들 앞에 있는 구절은 종이나 노예나 관련이 있었다. 모형적으로 그것은 완전한 종을 나타낸다. 메시야적 예언은 주님을 종종 이러한 인물로 보아왔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을 보라"(사 42:1).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슥 3:8).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사 52:13).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 53:11).

빌립보서 2장에서 바울은 이와 같이 권면하였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이어서 강조하시기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놀라운 비하였다. 즉 가장 높은 권세의 자리로부터 최대한 의존하는 자리로, 존귀와 영광에서부터 고난과 수치로 내려오신 것이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이가 복종의 자리로 들어온 것이다.

전에는 스랍들이 그 앞에서 얼굴을 가렸던 이가 천사들보다 더 낮아지게 되었다. 주님의 놀라운 낮아지심에 대하여 경탄하는 건전한 정신을 결코 잊지 말고, 오히려 더욱더 깊은 경외감과 찬양으로 그것을 공경하면서 묵상하여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

신약 성경 전체는 완전한 종의 섬김을 우리 앞에  제시하는 일에 유일하게 기여하고 있다. 마가복음의 의도는 주님이 어떻게 섬겼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서, 주님을 움직이게 하였던 영, 주님을 규제하였던 동기와 원칙, 주님이 행하신 모든 일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9)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종의 형체를 입었을 때 하신 말씀이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라고 하신 것은 그가 이 땅에 오신 이후 처음으로 기록된 말씀이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고 하신 것은 주님이 인간들 가운데 머무시는 동안의 그 완전한 생애 전체를 요약한 것이었다.

주님은 완전한 종으로서 그의 주인의 즐거움에 의존하셨다. 주님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롬 15:3).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사도들에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 되심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이었다. 위에서 인용된 구절들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그것의 독특성을 본다. 물론 누가 종이 되도록 선택하겠는가? 주님은 첫 번째 아담과 얼마나 다른가!

그에게 종의 자리가 주어졌으나, 그것을 저버렸다. 그는 그의 창조자에게 복종하도록 요구되었으나, 그는 반역하였다. 그러면 순종의 자리로부터 그를 매혹케 한 것은 무엇이었나?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라고 한 말이 그를 몰락케 한 매력적인 거짓말이었다. 주 예수에게 있어, 이것은 정반대였다. 그는 하나님이셨지만 자신이 높아지도록 하지 않았다. 그는 자진하여 그의 영원한 영광을 중지하고, 모든 거룩한 위엄의 훈장을 스스로 포기하고, 종의 형체를 취했다.

시험하는 자가 그에게 와서 그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을 거절하도록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권유하려려고 했을 때, 주님은 영들의 아버지께 복종하면서 사는 그 확고한 지위를 선포하셨다. 주님은 한순간도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길로부터 이탈한 적이 없었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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