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Exodus 175]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75]

En Hakkore 2024. 6. 22. 11:05

십계명과 그 결과(출애굽기 20장)

이 장에서 두 개의 크나큰 주제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데 그것은 하나님이 '율법' 을 준 것과 '제단' 에 관한 지시사항을 제공한다.

만일 이스라엘이 직접적으로 시내 산 언약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면(중재자가 요구됨), 그리고 만일 그들(죄인으로서)이 십계명을 준수하는 일이 불가능했다면, 왜 한 가지를 제시하면서 다른 한 가지도 주는가?

세 가지로 답할 수 있다.

첫째, 이스라엘(그리고 그 종족)에게 인간이 죄인임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관계를 하나님과 그의 동료로 명확하게 설명했던 불변의 기준 즉, 그 모든 부분에서 거룩하고 공의롭고 선한 기준은,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롬 7:7, 13).

둘째, 인간의 도덕적 무능력을 밝혀주도록 그 증거를 제시한다.

율법은 그 순결함과 형벌을 가지고 있기에, 한편으로는 인간이 율법을 준수함이 불가능하다(부패한 본성 때문에)는 사실을 밝혀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범죄를 속죄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에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롬 7:8~10)고 하셨다.

셋째, 인간에게 구세주의 필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 3:19, 23, 24).🎵

그러므로 십계명은, 인간들이나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수단(그것들을 순종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으로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님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것은 인간 이후에 죄인이 되어, 그 본성이 너무도 부패하여 그것을 준수할 능력도 욕망도 없어지기 전까지라도 결코 법률의 형식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율법은 생명의 길이 아니라, 행위의 규칙이었다. 인간의 타락한 존재가 된 훨씬 뒤에 십계명을 돌판에 새긴 것은 그의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조건이 취소되지 아니하였음과 더욱이 비록 채무자가 지불 능력이 없다 할지라도 징수를 위한 채권자의 권리가 조금도 취소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타락하지 않았거나 타락했거나, 구원을 받았거나 영화롭게 되었거나 간에, 인간이 그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함은 언제나 진리로 남아 있다.

예나 다름없이 옳고 그름의 차이가 유효한 동안에는,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기 위한 의무 아래에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의로운 요구를 역설하신 것이니,

첫째는 그들이 그의 피조물이기 때문이요,
둘째는 주님의 대속하신 자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그 요구 조건들을 충족시킬 수 없었음은 사실이기에,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따라 그 실패에 개한 대책을 마련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주님 자신의 주장을 확인했다. 우리는 '제단'에서 이 사실을 보게 된다.

'제단'의 상징적 중대성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출애굽기 20장에서는 없지만 뒤에 그 이후의 성경에 나오는 가장 사랑스러운 일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여보려 한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산에서 여호와의 임재를 분명히 보여주었던 두려운 현상을 보았을 때, 모세에게 이르기를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 20:19)라고 하였다.

이제 이 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부주의한 독자들에게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기도하면서 부지런히 성경 구절을 서로 비교하면 더할 나위 없는 절묘한 완전함이 드러나며,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우리는 여러 가지 장면의 완전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신명기 5:22, 27에서, 모세는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는 일과 그것이 백성에게 미친 결과를 회고하고 있다.

그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한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신 5:28)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가 이 말씀을 신명기 18:17, 18과 비교해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요구에 대하여 응답하신 전체 내용을 보게 된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재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이스라엘의 중재자에 대한 소원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행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인원의 하나로서, 결국 위대한 중재자, 대예언자 혹은 하나님의 대표자 안에서 실현될 수 있었다.

이는 여호와가 정확히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에게 가졌던 은혜의 사상을 우리에게 얼마나 복되게 드러내어 주는가! 많은 현대의 주석가들의 비참한 곡예를 물리칠 정도로 그리고 시내 산의 그 기념할만한 날에 대해 성경이 말해야만 할 것들에 대해 배우게 할 정도로 얼마나 참신한가!

Arthur W. Pink 출애굽기 p316

'강해시리즈 > 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odus 177]  (0) 2024.06.22
[Exodus 176]  (0) 2024.06.22
[Exodus 174]  (0) 2024.06.22
[Exodus 173]  (0) 2024.06.22
[Exodus 172]  (0) 2024.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