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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77]

En Hakkore 2024. 6. 22. 11:06

십계명과 그 결과(출애굽기 20장)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출 20:26).

이것의 의미는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것은 그 원리에 있어서 앞 절에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 '계단' 은 낮은 높이에서 높은 데로 오를 때 부담을 피하기 위하여 만든 인간의 고안물이다.

인간은 그가 만든 어떤 정거장으로도 하나님께로 올라갈 수 없다. 하나님이 죄인에게 원하는 것은 주님 앞에서 그의 참된 입장(진토 가운데 있는)을 취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기에서 그를 만날 것이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또 영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 거리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께로 올라갈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아들의 인격 안에서, 가련한 죄인에게 온 힘을 다해 내려오셨다.😎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영광의 주님의 놀랍고도 은혜로운 내려오심을 묘사하고 있다. 은혜의 숫자인 다섯개의 '계단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1)자기를 비워 2)종의 형체를 가가사 3)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4)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5)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렇다면 인간이 오를 그 어떤 '계단' 도 없음이 자명하다!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출 20:26).

하나님께로 올라가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만으로도 그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낼 뿐이다. 이러한 것은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을 기록한 바로 이 장에서 두드러지게 말한다.

아담과 하와가 미리 일러둔 실과를 먹자마자,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다"(창 3:7).

심중 한 가운데 있는 가장 깊은 비밀까지도 다 읽으시는 이 앞에서 그런 앞치마가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그 바로 다음에,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는 것이다.

무화과나무로 엮은 앞치마는 그가 벗었다는 사실(앞치마는 둘렀으나 벗었음)을 명백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로 올라가려는 인간의 노력만으로도 그 수치를 오히려 노출하는 것이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는 '흙' 으로, 다른 하나는 '돌'로 된 두 개의 '제단' 모두는 주 예수님의 인격을 지적하며, 주님의 다양한 완전성을 명백히 하는 것이 된다. 이 점에 대하여는 그랜트(Grant)로 하여금 해석하게 함이 가장 좋을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의 제단을 위하여 받아들이신 재료는 서로 대조된 것들로서 흙 혹은 돌이었는데, '흙' 은 그 이름이 부서지는 성격으로부터 온 것이요(eartz라는 말은 라는 말에서 왔는데 히브리어로 '부서져 버리다' 란 뜻이라고 파커스트C. H. Parkhurst가 말함).

그리고 '돌' 은 압력을 견디는 것으로서 견고성과 내구성에 의한 특징이 있다. 인간은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고, 이 흙이 그것을 갈아 엎는 손길을 허용함에 따라 비옥해지는 것과 같이, 인간도 하나님의 손길에 자신을 맡김에 따라 그렇게 된다.😎

그러므로 땅은 자연스럽게 그 연약함 가운데에 있는 피조물을 상징하는바, 그것을 자각하며, 그 연약성과 복종의 입장을 수락함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게 된다.

그 반면에 돌은 다른 것에서 존재하는 강인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연약성의 의식과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자라난다. 곧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 하심과 같다.

이제 양자의 관점에서 볼 때, 완전하셨던 이가 인간의 모든 현실로 내려오셔서 그 연약함과 또한 연약함에서 생기는 그 놀라운 강인함을 아시기에,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자신을 맡기셨다. 이와 같이 그는 인내하면서 하나님 자신에게 복종하셨고, 그 아버지의 뜻에 스스로 복종하심으로 인내하였다."

그렇다면, '흙'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복종함을 말하는 소재의 '고운 가루'(레 2장)와 그 생각하는 바가 일치한다. 이에 대해 참으로 복된 증거는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겟세마네에 있다.

'돌'은 성막에 있는 제단의 놋과 같은 동일한 것을 지적한다. 그것이 거기서 보여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오직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운 불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제단의 돌은 '잘라 내거나' 사람의 정으로 쪼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이러한 모형(types)의 정확성을 보존하셨는지를 보여준다.

그 돌들은 창조자가 그것을 만드신 그대로 두어야 하며, 인간은 그 형태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 그 원형(antiype) 혹은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형태' 를 그대로 간직하였다는 것이 될 것이다.

환경의 그 모든 압력과 그리고 인간들과 사탄의 그 모든 수고마저도 그것을 변형시킬 수는 없었다. 주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실 것을 선언하셨을 때(위대한 희생제물이 드려져야 할 '제단'),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라고 말했다.

그것은 인간을 통하여 '돌'을 '다듬으려는' 사탄이었으니, 주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고통을 당하셨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더 부지런히,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필자와 독자를 각성시키기를 바란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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