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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57]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57]

En Hakkore 2024. 6. 21. 11:06

모세의 아내(출애굽기 18장).

"그리스도의 종들이 계속적으로 실패할 뿐만 아니라 그 실패가 겸손의 탈을 썼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것은 마치 자기 자신을 불신하는 것 같고, 자신을 심히 낮추는 것 같이 하면서 무거운 책임에 스스로 움츠리는 것 같이 보이나,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강요하셨단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가 분명히 나와 함께 하실 것이요. 그가 나와 함께 하심으로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라면 태산이라도 무겁지 않을 것이나 그가 계시지 않는다면 깃털이라 할지라도 내 힘에 지나칠 것이다.

만일 인간이 아무런 근거 없는 그 마음에 따라 하나님이 결코 의도하신 일이 없는 짐을 스스로 짐으로써 그 짐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면, 그 짐의 무거움으로 말미암아 분명히 압박감을 받게 되리라는 것쯤은 예상되는 일이지만, 그러나 그 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에 의하여 지명된'(divinely-appointed) 지위를 떠나서는 겸손의 열매란 있을 수 없다. 반면에 깊은 겸손은 그 스스로가 단순한 하나님의 의지 가운데 머물러 있음을 밖으로 드러낼 것이다. 우리가 사역이 무능의 밑바닥까지 줄어든다는 사실은 자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으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의 능력에 근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능력에 근거하여 부르셨으므로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거나 결정적으로 그를 불신하지 않는다면, 그 사역에 부과된 무거운 책임 때문에 어떤 섬김의 의무나 신앙의 표명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모든 권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그 능력이 한 사람의 대리인을 통하여 역사하거나 아니면 칠십 인 일지라도 그것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나, 만일 한 대리자가 그 권위를 부인한다면 그것은 다만 그에게만 그만큼 해로운 것이다.

하나님은 만일 사람들이 그 존영의 자리를 보존할 수 있도록 그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거기에 거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C. H. M)😎

그 결과는 충격적으로 나타났다. 모세가 그 짐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불평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제하여 주셨으나, 그것을 제거함에 있어서 부르심을 받은 바 그 높은 영예는 여전히 혼자 걸머지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함께 말하고 네게 임한 영울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 11:16, 17).

이득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런 새로운 힘이 개입되지 않았고 다만 한 사람에게만 내리셨던 '영' 이 이제는 칠십 인에게 분배된 것뿐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면을 개선할 수는 없다. 만일 그가 '일반 상식' 을 모방하여 행동하기를 고집한다면 아무 이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손실이 많아질 것이다.

이 장의 마지막 절에 빼놓지 않고 하신 말씀은, 곧 "모세가 그의 장인을 보내니 그가 자기 땅으로 가니라"(출 18:27)는 것이다. 민수기 10장에 이 말씀을 더 상세히 기록하였다.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민 10:29, 30).

이는 얼마나 이드로(여기에서는 호밥이라 불리움)의 심정을 잘 드러내어 주는가? 그는 근친에 대한 미련을 여호와의 축복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 그는 광야로 '자신의 땅' 을 삼았으며, 그의 친족' 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대신하였다.

그는 믿음에 따라 행치 아니하고 보이는 것으로 하였으며, 장래의 '보상' 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현세와 이 땅만을 택하였다. 그러한 자가 하나님의 종을 간섭하는 일을 어찌 합당하다고 하겠는가!

이 장을 맺음에 있어서 이드로가 모세를 떠난 사실은 18장의 전반부에 제시된 모형적 상황을 결코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드로가 그의 고향과 친족에게로 돌아간 것은 여호와와 그의 백성에 대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비극이 천년왕국의 마지막에 있을 것이다.

시편 18편에 이르시기를, "주께서 나의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여러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그들이 내 소문을 들은 즉시로 내게 청종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이방 자손들이 쇠잔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돌며 나오리로다"(시 18:43-45)라고 하셨다.

천년왕국의 때에 이러한 일이 성취될 것이다. 많은 이방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나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으로 사로잡히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사탄이 풀려남으로 그들은 신속히 그의 깃발 아래로 모이게 될 것이다(계 20:7-9 참조).

주께서 우리의 심령을 견고하게 하사 현세에 속한 것들과 그 보이는 것에 빠져 들어가지 않도록 지켜 주시기를 바란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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