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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54]

En Hakkore 2024. 6. 21. 11:04

모세의 아내(출애굽기 18장).

십보라가 모세에게로 돌아온 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완전한 모형이다. 어떤 이들은 십보라를 교회의 모형으로 보지만 구약성경 그 어디에서도 교회로(그 자체로 하나의 연합된 전체로서) 보이지 않는다.

골로새서 1:26, 27등에 보면 이 사실이 아주 명백하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우리의 모형의 그 상세한 내용이 그러한 해석을 금지한다.

첫째, 십보라는 그의 남편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지금 만약에 십보라가 교회를 표상한다면, 그리고 그 교회를 그리스도의 장래의 아내로 본다면, 그 모형은 여기에서 완전히 우리의 기대에 어긋난다.  

교회가 어린양의 신부임을 믿는 자들은 '혼인' 을 오히려 미래의 일로, 휴거(the Rapture) 이후에 발생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만일 사실이 그러하다면, 휴거 이후에, 그때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영영 분리될 것인가?

그때에, 물론 그렇다! 그렇지만 모형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정확하다, 십보라는 여호와의 신부로서 이스라엘을 표상하지만(사 54:6; 렘 31:32 등), 지금은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호 2:2).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회복될 것이다(사 54:4-8).

둘째, 십보라가 그의 남편으로부터 떨어진 원인과 계기를 조심스럽게 주목해보라. 이것은 출애굽기 4장의 거의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노예의 집으로부터 이끌어 내려고 애굽으로 출발할 때에 그의 아내는 그와 동행했다. 그때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 죽이려 하였다. 그 이유는 그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치 않았다는 태만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구절은 이러한 태만의 원인이 그의 아내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즉시 십보라는 아들에게 이 일을 스스로 수행하였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격렬하게 화를 내면서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출 4:25)라는 말로 모세를 꾸짖었는데, 이 말은 바로 다음 구절에서 반복되었다.

그 모형은 얼마나 분명하고 정확한가! 그 아들의 할례에 대한 십보라의 불순종은 명백하게 율법에 대한 이스라엘의 실패를 지적한다. 십보라가 모세로부터 분리된 것(그가 '피투성이 남편' 혹은 문자 그대로 '피의 남편' 이었기 때문에)은 십자가의 범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 소외되었음을 말한다.

즉, 성경에 이르기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고전 1:23)라고 했다. 피 흘림은 십보라에게 거리끼는 것이었다!

셋째, 그녀의 결혼의 열매에 주목하라. 그는 모세에게서 '두 아들' 을 낳았다(출 18:3). 십보라를 교회의 모형으로 간주하는 자들은 이러한 상세한 사항들을 무시하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편리하여서,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다루는 방법이 아니다. 언제나 그 어떤 교리나 예언 또는 모형에 대한 우리들의 견해 중 어떤 것에도 맞지 않는 일에 봉착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것들을 개정하거나 중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상황 안에 있는 정보는 몇 가지 짝 속에도 있다. 요셉의 아내도 두 아들을 낳았다. 이삭의 아내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아내는 시내 광야에서 처음으로 여호와의 배우자가 된 이스라엘을 고려하였던 표현이다.

그 결혼의 결실은 그들의 역사에 있어서 이후의 기간을 가리킨다. 그 기간의 어떠함은 의문시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차후 역사에 있어서 두드러진 점은 르호보암 때에 왕국이 서로 떨어져서 이스라엘과 유다 둘로 갈라진 때이다. 이와 같이 그' 아내'는 '두 아들'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넷째, 십보라의 아들들의 이름은 심오한 의미가 있다.

장자의 이름은 '게르솜' 이었는데 그 뜻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는 뜻이다. 모세가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는 의미이다(출 2:22).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을 적절하게 말해준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엘리에셀' 로서 '하나님은 나를 도울 자' 라는 뜻이다.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을지라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놀라운 도움을 받아 전 세기를 거쳐 보존되었으며, 이방으로부터  전멸되거나 그들에게 흡수되지 않았다.

유대인들의 대다수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들을 돕고 계시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또한 십보라의 둘째 아들의 이름이 천년왕국의 견해가 있는 출애굽기 18장 이전까지는 나타나지 않음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

게르솜은 출애굽기 2장에 나타나 있으나 거기에 엘리에셀은 없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하여 회복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얼마나 놀랍게 그들을 도우셨는지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다섯째, 십보라의 아들들이 모세에게로 돌아온 때를 살펴보자.

그때는 "모세의 장인이며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가 하나님이 모세에게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들으니라...이드로가 ...그의 아내 십보라와 그의 두 아들을 데리고 왔으니" 라고 한 때였다.

그때는 모세가 여호와의 요구를 바로에게 제시할 때가 아니었고 유월절 다음 날 아침도 아니었다. 그와 달리 그때는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율법 증여자가 된 이후였다!

같은 방식으로, 이스라엘은 역시 그들이 거역한 메시야가 그들의 왕이요 주로서 땅에 나타나 보일 때까지 하나님께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다.

여섯째, 우리가 방금 주목한 것과 현저히 일치되게도, 모세가 있었던 그 장소는 화목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곧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진 친 곳이라"(출 18:5).

'산' 이란 언제나 그렇듯이 왕국 또는 통치적 권위를 말한다(시 2:6; 사 2:3 등).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신 곳은 이 동일한 산의 정상에 있었다. 게다가 주 예수께서 앉아서 그의 왕국에 대한 법을 주신 곳이 산이었다(마 5장).

예수님이 변형되사 그의 왕국의 영광을 축소시켜 보인 곳이 산이었다. 예수님은 산위로 돌아올 것이다(슥 14:4).

그러므로 '하나님의 산' 은 하나님의 통치적 영광을 말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복귀할 때도 하나님의 통치적 영광이 그의 아들의 인격을 입고 눈에 띄게 지상에 보이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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