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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44]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44]

En Hakkore 2024. 6. 20. 11:32

지팡이로 친 반석(출애굽기 17장).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출 17:1).

이 장의 시작을 앞에 있었던 내용과 연결되게 '그리고' 라는 단어로 시작한 것에 주의하라(한글개혁 성경에는 이 말이 빠져 있음). 이와 마찬가지로 16장의 시작도 15장의 마지막 절의 내용과 연결 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라는 단어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라는 말은 한 단어이기는 하나 그것을 주의 깊게 평가하지 않음으로, 자주 그 대단한 중대성과 가치가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무것도 하찮은 것이 없으며 각 단어와 음절은 그 독특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애굽기 15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23절) 이스라엘이 마라에 도착하여 그곳에 있는 물이 쓰므로 마실 수 없었다. 그 즉시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24절) 라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그 모든 일들을 행하신 이후에도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는 오래 참으시는 은혜로 그 즉시 백성들의 고통을 들어주었다.

여호와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심으로 그 쓴 물에 던지자마자 곧 단물이 되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 열 두 개의 물샘이 있는 엘림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 출애굽기 15장은 끝난다.

출애굽기 16장은 '그리고' 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앞에 있는 내용을 연결시키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그 목적이 무엇인가?

즉각적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무모한 행위는 변명할 수 없다는 사실과 또 그것을 강조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니 곧 하나님의 놀라운 인내를 베푼 일뿐만 아니라 너무도 은혜롭게 대하면서 주님의 무한한 자비를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은 이제 신 광야에 들어왔으나 거기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 믿음의 시련에 그들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근래에 있었던 마라의 체험에 비추어 그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즉각적으로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그들의 거룩한 은인에게로 돌아가 그를 고대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커녕 또 다시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출 16:2),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시 78:19) 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성급함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다시 그들을 구하시어 하늘에서 떡을 비처럼 내려주셨다. 우리는 방금 본 장에는 만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수록되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공부하고자 하는 이 장도 다시 '그리고' 로 시작된다(한글개혁에는 이 말이 빠져 있음). 이 장의 서두에서 제시해주는 광경은 앞 장의 서두에서 본 것과 매우 흡사하다.

이스라엘은 다시 한 번 믿음의 시련에 봉착하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의존도가 시험을 받았다. 이번에는 양식의 부족이 아니라 물이 없었다. 이는 믿음의 길이 시련의 길임을 잘 입증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들은 반드시 육신에 달갑지 않는 일에 직면할 것을 얘기해야만 하며, 또한 믿음 그 자체에도 지속적이며 실제적인 시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여기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를 떼어내어, 물질이나 인간적 근원을 의지함이 없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전폭적으로 그에게 자신을 던지도록 하는 것이다.

오, 얼마나 더디게, 얼마나 고통스럽도록 더디게 이 교훈을 배우는가! 얼마나 비참하게, 얼마나 반복해서 우리는 실패하고 있는가! 여호와는 우리에게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가!

서두의 '그리고' 가 가리키고자 한 것이 바로 이 사실이었다. 여기 출애굽기 17장은 16장의 서두에서 명시한 내용의 비극적인 반복일 뿐이다.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그것이 대체로 무엇이란 말인가? 바다를 갈라 그 물결을 그들의 대적 위에 되돌아 덮치게 하신 이에게는 아무런 어려움이 되지 못했다. 여호와께서 물을 마련하시는 것은 그들에게 떡을 마련하는 것보다 어렵지 않았다.

여호와는 그들의 목자가 아니셨던가? 만일 그렇다면 부족함이 있을 것인가?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친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라고 하였다.

그는 그곳에 물이 없음을 알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바로 그곳으로 이끄셨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때때로 우리가 어떤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 피조물의 위안이 되는 시내가 말랐을 때, 우리는 자신, 우리의 친구들, 형제들 또는 마귀까지도 원망한다.

그러나 믿음의 시련이 존재하는 모든 여건과 처지에서 맨 먼저 기억해야 할 일은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를 그곳에 이끄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해된다면, 우리가 거기에 머무는 동안에 주님이 우리를 양육하실 것을 신뢰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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