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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42]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42]

En Hakkore 2024. 6. 20. 11:31

그리스도의 모형 만나(출애굽기 16장).

11) 여호와의 백성이 아닌 자들은 만나를 멸시하였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민 11:4-6)

이 말은 이사야 53장에 있는 말씀을 얼마나 기억나게 하는가?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라고 하셨다. 죄악으로 눈이 어두워진 육에 속한 자연인은 주 예수님의 매력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예수님의 기이한 온전함을 분별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이, 그가 그의 심각한 필요를 알지 못하니 어찌 그리스도가 오직 그 필요를 채워줄 수 있으리! 이러므로 그는 그리스도께로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를 원하지도 아니한다.

12) 만나는 땅의 흙 위에 내려진 것이 아니라 이슬 위에 내렸다.

"밤의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는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민 11:9).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은 영적인 의미와 적용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위에 있는 사실의 심오한 의미는 무엇인가? 창세게 3:19이 이 구절을 조명한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타락한 인간에게 하신 것으로 죄가 사람 속에서 작용했던 부패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여기에 있는 '흙'은 나아가 타락한 인간성을 말한다.

이제 만나가 '흙' 위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슬 위에 떨어졌다. 이 사실은 우리 주님의 인간성의 그 유일성과 결백하심(incorruptibility)을 얼마나 여실히 예시하는가! 말씀이 육신이 되기는 하였으나 주 예수의 인성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공유하지 않으셨다.🎵

그는 종의 형체를 입었으나 그를 위하여 예비된 육신(히 10:5)은 이 세상의 '흙'(dust)에 속하지 않았다. 그가 탄생하기 전에 천사가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13) 만나는 흰색이었다.

출애굽기 16:31에 보면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라고 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날마다 행하실 때 외부로 나타난 그의 점 없는 순결을 말한다.🎵

그는 "죄를 알지도 못했다"(고후 5:21). "그는 죄가 없으셨다"(히 4:15). "그는 죄를 범치 않으셨다"(벧전 2:22). 그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셨다"(히 7:26). 베드로전서 1:19은 그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이라고 했다.

앞의 표현은 외부에 오염이 없는 것을 말하고 뒤의 것은 내부에 결점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가 이 부패한 지경을 지나시는 동안 불결한 일에 개입되신 적은 없었다. 그만이 나병자에게 오염되지 않은 채로 손을 얹을 수 있었다. 그는 '점 없고' 깨끗하고 순결하였다.

14) 만나는 그 맛이 달았다.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출 16:31).

이것을 해석하기 위하여 솔로몬의 아가를 살펴 보아야 하겠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아 2:3).

또다시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구나...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아 5:13, 16).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란다"(시 104:34).

15) 만나를 갈기도 하고 굽기도 하였다.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민 11:8).

이 얼마나 복되신 우리 주님의 고난을 잘 말해주고 있는가! "그들이 강퍅하므로 신음하셨고," 그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탄식' 하셨으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우셨다' 는 말씀 외에도 다른 많은 표현들이 만나를 가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헤롯의 법정에서 유대인과 잔인한 군병들의 손으로 당한 일은 우리에게 만나를 찧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가 십자가상에서 아버지의 불같은 진노에 복종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만나가 갈리고 찧긴 것은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상처를 입은' 그분을 말해주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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