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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41]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41]

En Hakkore 2024. 6. 20. 11:30

그리스도의 모형 만나(출애굽기 16장).

7)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던 바로 그곳에 내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사의 급박한 위험에 직면해 있었으나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 풍성하신 은혜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도록 이미 예비하셨고, 이제는 우리가 곧 알게 되겠지만, 굶주림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을 구하러 그들이 긴 여행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만나가 장막 주위에 내려졌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출 16:13, 14).

여기에 구세주의 필요를 의식하고 그를 만나려고 근심하는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하늘에 올라갈까 하지 말라 이는 그리스도를 위에서 내려왔기 때문이요 또 누가 깊음에 내려갈까 하지 말라 이는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신 복된 사실이 예시되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말씀이 심히 네게 가깝도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가깝다는 사실로부터 죄인들에게 책임이 솟아난다. 각 장막 문 앞 모든 주위에 만나가 널려 있었다.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그것을 거두어들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발밑에 밟혔다! 죄인이여! 당신은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의 엄격한 말씀, 즉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대적하는 자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라.😎

8) 만나는 개개인이 거두어들여야만 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출 16:16).

이것은 너무도 영적인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영접(요 1:12)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믿어 줄 수는 없다. 대리인에 의한 구원이란 절대로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고 하셨다. 구원하는 믿음은 각기 깨달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 전체를 사랑하시고 그것을 위하여 자기를 주신 것은 사실이나(엡 5:25) 교회의 각 지체가 사도 바울과 함께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셨다"(갈 2:20)고 말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또한 복된 특권이다.

9) 만나는 매일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출 16:4).

그들이 오늘 거둔 만나는 내일까지 충분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매일 신선한 공급을 받아야 했다. 너무나 많은 부의 백성들이 실패하는 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에게 '매일' 양육을 받아야만 한다. 마치 육신의 영역에 있어서 우리가 어제 먹었던 음식으로는 오늘의 자양분을 채울 수 없음과 같이, 지난날의 경험과 성취한 것으로는 현재의 급박한 필요를 채우지 못한다.

마음의 중심에 지속적으로 그리스도가 보존되어 있어야만 한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기도가 되기를 바란다.

10) 식욕에 따라 거두는 양을 결정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출 16:16, 17).

이와 같이 우리가 만나를 거두는 양을 지배한 것이 식욕이었음을 본다. 이것은 신자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며 진지한 사실인가?

"우리 모두는 원하는 것만큼 그리스도를 소유했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일 우리의 욕망이 크고, 우리의 입을 넓게 벌리면 그가 채워주실 것이다. 우리가 원할 때, 우리는 또한 너무 많이 원하거나 또는 좌절할 필요가 없다.

반면에 필요에 대한 요구가 심히 연약하다면 소량의 그리스도만이 공급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광야 음식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먹을 양은 전적으로 우리들이 느끼는 영적 필요와 사모함에 달려 있다"(Ed. Dennett).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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