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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39]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39]

En Hakkore 2024. 6. 20. 11:29

그리스도의 모형 만나(출애굽기 16장).

앞 장에서 우리는 '만나'를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생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아주 은혜롭게 예비하신 양식의 모형으로서, 여호와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육신적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공급하신 것임을 고찰해 보았다.

그 양식은 바로 그의 복된 말씀이다. 그러나 '말씀'이란 성경과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모두를 말한다. 그 둘은 아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시편에 그리스도께서 이르시기를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시 40:7)이라고 하셨고 또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어느 한 가지에 대해 가정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은 다른 것에 대해 예언할 수 있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의 주된 가치는 완전함을 제시하며, 성육신한 말씀과 교제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자신의 양식으로 삼을 때에만 진실로 기록된 말씀을 양식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만나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온전하심을 예시하는 것으로 우리의 관심을 한정지어 생각할 것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눈을 가진 자는 많은 모형 아래에 그리고 수많은 그림자의 상징들 위에 있는 복되신 주님의 영광을 발견할 것이다. '모세와 선지자' 가 기록하였던 사람 중에서 그리스도를 예시하는 것들을 기도하면서 탐구하는 것이 우리가 신약성경을 연구하는 주된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요한복음 6:32, 33에 기록된,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에 의하여, 만나가 성육신하신 아들을 가리키는 여부에 대한 모든 의심은 제거되었다. 거기에서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신이 자기를 낮추사 우리의 죄로 물든 눈을 열어주어 그의 완전한 법도로부터 우리가 '기이한 일' 보기를 간절히 소원하기를 바란다.

1) 만나를 내려주게 되었을 때의 입장은 놀라우면서도 또한 엄숙하다.

여호와로부터 기이한 자비를 입은 후에, 이스라엘은 신 광야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3) 라고 말한 사실을 본다.

이것보다 더한 불신앙과 감사할 줄 모르며, 거역하는 마음의 가공할 만한 노출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거기에서나 그 후에서나 바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의 진노를 쏟는 대신 하늘로부터 양식을 비처럼 내리시는 놀라운 은혜로 그들을 대접하셨다.

놀랍게도 이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내려온 그 세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사천년 동안이나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한 그의 자비를 인간에게 보여주시기 위하여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셨다(마 5:45).

그런데 인간의 응답은 어떠하였나?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어었느니라"(롬 1:21-23).

구약성경의 역사가 얼핏 보여주는 것은 이스라엘도 더 나은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그 족속을 모두 버리셨다 하더라고 무슨 놀랄 만한 일이 될 것인가! 아니, 오히려 더할 수 없는 기이한 은혜로 사랑하는 그의 친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모든 인간 피조물들의 갚을 여지가 없는 부채까지도 모두 탕감해 주셨다.

2) 만나가 떨어지는 장소도 역시 아주 의미가 깊다.

'하늘의 양식' 이 맨 처음 떨어진 곳은 '신 광야' 였다(출 16:1). 하나님의 아들이 내려오신 이 세상의 성격을 정확히 묘사하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적합한 이름을 택하기는 정말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에게 이 세상은 '신(Sin, 죄) 광야' 였다! 광야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곳은 집이 없는 곳이다. 그 누구도 거기에다 집을 지으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에게 이 세상은 집 없는 곳이었다. 그가 나실 때에 사관에 있을 곳이 없었으며, 그의 공적인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도 머리 둘 곳이 없었으며, 못 박히신 그의 육신을 위해 빌린 무덤이 있었을 뿐이니, 이 모든 것이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

신(Sin ,죄) 광야! 죄 없으신 이가 여기에 계셨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빛이 어둠에 감추어진 것을 얼마나 잘 드러내 주는가! 구세주의 상인자가 얼마나 유다와 이방의 죄성을 동일하게 잘 보여주는가!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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