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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25]

En Hakkore 2024. 6. 19. 11:28

광야에서(출애굽기 15장).

"모세가 홍해에서는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출 15:22).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자신에게로 구별하실  때, 그들은 '보혈'로 구속함을 받아야만 하고 그 후에 청결하게 된 예배자로 가까이 오게 해야만 할 필요가 물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약속된 기업으로 들어가기 전에 광야를 통과해야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지혜로운 목적의 일부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가지의 주요한 의도가 성취된다.

첫째, 광야의 시련과 시험은 우리의 심령의 약함과 육신의 고칠 수 없는 부패를 드러나게 하는데,  이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우리의 "교만을 감추게 한다").

또한 우리의 무가치함, 즉 우리가 전혀 '아무 선함'이 없음을 알게 해서 기업의 땅으로 들어가는 그 자체도 단지 지존자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경험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이와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실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행하시면서 그들 가운데에서 주님의 임재와 사랑을 명백히 나타내신다.

이스라엘의 실패의 결과와 달리 구속하신 백성을 보존하는 데 그 능력을 펼치시고 그리고 그들의 부족을 주님의 은혜를 아낌없이 부어주는 기회로 삼는 것이 주님의 목적이므로, 우리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메마른 황량한 광야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또 그들을 위하시는 하나님도 역시 보도록 해야만 한다.

시련과 낮추심은 '주님의 결말'(약 5:11)이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의 오래 참으심과 선하심을 새롭게 보여주는 기회이다.♡

광야는 성도들의 연약함과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들의 실패를 드러나게 하며 그리고 앞으로도 드러나게 하겠지만, 이것은 그들을 시험의 장소로 이끄신 이의 능력과 자비를 크게 드러나게 할 수 밖에 없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우리의 궁극적 행복을 내다보시면서 "우리의 후일의 결말을 위하여 선을 행하실 것"이다(신 6:18). 시련이 끝나서 미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었을 때에, 모든 것이 영예와 찬양, 영광이 되는 것을 발견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으로 광야를 통과하도록 하였던(그리고 통과하도록 하는) 목적은 그들을 시험하고 검증하려는 것뿐만 아니라(신 8:2-5) 그러한 시련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실패를 참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동안 주님이 그들에게 어떤 분이었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광야는 우리 자신을 드러내어 주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명백하게 밝혀준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여기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그들이 '광야' 에 있음에 대해 알게 된다. 출애굽기13:18에 보면,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그들이 실제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20절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출 13:20) 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나와서 광야로 들어갔다.' 그 연결은 매우 충격적이고 교훈적이다. 하나님이 구속하신 자들을 광야로 인도했던 것은 홍해를 통과하는 통로였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통과한 여정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것을 말한다(롬 6:3, 4). 상징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은 지금 부활의 근거 위에 있었다.

우리는 이것의 참뜻을 놓쳐서는 안 되는바,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의 깊게 말씀하시기를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출 15:22)라고 하셨다.

여기에서는, 다른 많은 구절과 마찬가지로 삼일은 부활을 말한다(고전 15:4). 오로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그와 더불어 하나임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임을 인정할 때, 그때 그는 '광야'에 대해 의식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지위와 그의 아들 가운데 있는 우리의 분깃을 이해하는 만큼 그것에 비례하여, 이 세상은 우리에게 쓸쓸하고 황량한 광야가 될 것이다.

자연적 인간에게는 세상은 매력적이고 유혹적인 많은 것을 제공하지만, 영적인 사람에게는 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만 영혼의 '허무와 고통'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감각만으로는 세상에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일이 많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는 온 장면을 가로질러 씌여진 죽음이라는 글자만 보인다.

- "주변의 모든 것에서 나는 변함과 타락을 본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섬기는 것이 많이 있으나 새로운 피조물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적인 삶에 관한 한 이 세상은 한갓 메마르고 황량한 광야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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